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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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함께 사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큰 트라우마 겪어...전례 없는 폭염과 폭우, 기후변화의 갈림길에서 ‘좁은 문’으로 향해야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5. 좁은 문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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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고 그래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게 지난 더위에 대해 하소연을 해본다. 바람은 그저 껄껄 웃으며 다시금 불어주어 땀에 젖은 수도복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듯하다.

아버지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 코로나19에 감염되셨다. 안 그래도 걱정돼서 마스크를 잘 챙기시도록 잔소리를 했었는데,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내가 놀랄까 봐서 어머니 편찮으신 것을 쉬쉬했던 언니들이 병원에 입원하시고서야 내게도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이상하더라고. 방금 한 일도 생각 안 나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대로 아버지 따라가겠구나’라고 생각했어. 아버지랑 약속했거든. 바로 따라가겠다고”라고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배우자를 상실했을 때에 인간은 가장 큰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뇌세포가 급감소한다고 한다.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충격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래서 간혹 기억을 잃기도 한다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겪고 계신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66년을 함께 살아오셨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그 흔한 표현 한 번 안 하셨지만, 항상 아버지를 위해서 새로 밥을 짓고, 아버지를 위해서 가장 먼저 밥을 뜨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음식 하시면서 그 표현을 담으셨었다. 어쩌다가 아버지께서 “나물이 참 맛있네”라고 말씀하시면 아무 말 없이 아버지 앞으로 나물 그릇을 더 당겨 드리셨는데 그 작은 행동에 말보다 진한 사랑을 고백하고 계셨었다. 그러니 어머니도 모르게 마음의 어려움을 맞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류는 지금 이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보인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인한 날씨 때문에 일종의 공포 속에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과 또한 인류 공동체가 코로나19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고, 걸리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로 지내온 우리 안에 있을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또한 익숙해지면서 다시 이전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전례 없는 폭우와 폭염이 몰려오자 우리는 다시 겁먹고서 ‘뭘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묻고 있다. 이미 예견된 상황인데도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우리의 반응이다. 기후변화로 점점 겨울은 줄고 여름의 날 수가 늘고 있다는데, 이 모든 기후변화도 우리네 인간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선택이 우리 자신, 혹은 인류만의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집 전체의 시스템을 바꾸게 된다는 것에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과거에 인간은 바람의 방향과 냄새, 구름의 모양, 모든 생물의 소리와 빛깔과 움직임을 보며 날씨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러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마치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익혀서 운전할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내비게이션에 의존되어서 그것 없이는 운전할 수 없는 것처럼 길을 아는 우리의 감각이 퇴화한 것과 비슷하다. 지금 바람과 구름,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울부짖고 있다. “지금 이 갈림길에서 살고 싶으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해. 그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야. 다른 길은 죽음을 향한 길이야.”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퇴화한 감각을 일깨워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예레 6,16)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타깝게도 “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좁은 문으로 향하는 길로 가야겠다. 이 길을 의롭게 걸을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 네 형제자매의,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들어가려는 의로움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실 것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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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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