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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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1주일 - 주님을 ‘더욱’ 신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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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 지나면 처서입니다. 처서가 지나면 바닷물이 차갑다고 수영을 말리시던 할머니는 그즈음엔 방바닥 한기를 염려하며 잠자리에 두꺼운 요를 깔아주셨습니다. 참 유난했던 이 더위가 한풀에 꺾이진 않겠지만 서서히 햇볕의 농도는 묽어질 테고 불어오는 바람도 한층 상쾌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2)고 노아와 맺으신 하느님의 약속이니,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전하신 이사야의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 그 덕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세상의 어느 이방인 누구든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더러는 사제가 되고 더러는 레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온 세상을 “주님께 올리는 제물”로 봉헌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영광을 알리라는 사명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셨습니다.

이사야서는 당신의 진심을 헤아리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매달려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절규로 시작합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이사 1,2) 그런데 오늘 우리가 듣는 이사야의 예언은 전혀 딴판입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는 주님 음성에 신바람이 묻어있습니다. 무엇이 주님을 이토록 신바람 나게 했을까요?

하느님의 슬픔은 당신의 뜻을 몰라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청개구리 같은 행동과 삐딱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선택된 선민이었음에도 주님의 뜻을 외면했습니다. 무한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도 우상 바알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습니다.

“너희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는 되지 않게 하실 것”(신명 28,13)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기억하면서도 “듣고 따르면”이라는 사항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섬기지 않으면”이라는 단서 조항을 묵살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이 딱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싶습니다. 우리 역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신바람 나게 살지 못하니 말입니다. 지금도 예사로이 주님의 원칙을 알고 있지만 내 생각과 세상의 논리와 버무려내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말씀의 요지를 맘대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고치면서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으니 말입니다. 수도 없이 참회를 위장하고 ‘자비로운 주님 은혜’의 무한함만 강조하며 뻔뻔하게 지내니 말입니다. 결국 매일 매일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잃고 무겁고 힘들게 세상살이를 견디기에만 급급하니 말입니다.

때문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을 쿡 찔러 헛바람을 빼내십니다. 당신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들었다고 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없는 곳이라고 잘라 이르십니다. 한 번 닫힌 문 앞에서 암만 두드려봤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를 들려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살벌한 경고를 내지르십니다. 이렇듯 아주 상세히, 조목조목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실만으로 천국의 좁은 문이 넓어지는 기적은 없다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어서 ‘착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십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당부에서 세상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봅니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당신의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그 말씀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내기를 원하시는 간절함을 만납니다. 자녀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듬뿍 지원하고 한껏 응원해 주시는 손길을 느낍니다. 자녀들이 당신의 뜻에 따를 때에 신바람 나시는 부모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부모님처럼 자녀의 생각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싶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는”(에페 4,15) 축복을 얻도록 전부를 쏟아 뒷바라지하고 싶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살아감으로 당신께서 마련하신 은혜를 한껏 베풀어 주실 때에 신바람이 나십니다. 미적대며 주저앉은 우리의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다시 달려갈 수 있도록 부축하시며 이끌어 도우십니다.

우리는 그날 하느님께서 신바람을 내시며 선포하신 구원 계획에 따라서 신비의 은총을 살고 있습니다. 결코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은총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 중에서 뽑힌 고귀한 품격을 지니고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그분께서 주시는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 낙심”하지 않는 믿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을 받았지만 결국 천국에서 외면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라는 주님의 약속이 꼭 이루어질 것을 알고 또 믿는 지혜인이기에 참으로 그러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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