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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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드럽고 따뜻한 주님 손길에 우리 모두 치유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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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로 향한 우리의 귀가 활짝 열리기를…

“에파타!”라는 예수님의 외침을 묵상하다가, 오래전 유학 시절 초기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야심만만하게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꿈도 많았습니다. 약간은 고생도 되고, 약간은 향수에도 젖겠지만, 그래도 고색창연한 서구 전통과 문화들이 살아있는 유럽에서의 낭만적인 생활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마음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본산에서 신학도 제대로 배우고, 가끔 성지도 순례하고, 고독도 씹으면서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공동체에 도착하고 나서, 한 이삼일 동안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인지 회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관심도 가져주었습니다. 저 역시 손짓발짓을 동원한 가장 기초적인 회화를 통해서나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더 이상 대화를 진척시킬 수 없었습니다. 즉시 끔찍한 연옥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을 걸어오면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니, 그냥 실실 웃기만 했습니다. 기본적인 대화가 안 되니 사람들도 답답해하고, 나중에는 아예 무시하는 듯 했습니다. 자꾸만 제 안에 갇히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으러 내려가기도 싫어졌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괴롭더군요. 한국에서 사목활동 할 때는 나름대로 어깨 힘주며 살았는데, 거기서는 완전히 애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애물단지도 그런 애물단지가 없었습니다. 정말 자존심이 엄청 상하더군요. 하느님께서 제대로 된 바닥체험을 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연옥 같은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깜짝 놀랄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빠르게 지껄이던 형제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렴풋이나마 뭔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서 언어 공부에도 재미가 붙었습니다. 일단 들리기 시작하니 조금씩 입도 열렸습니다. 공동체 형제들은 그런 저를 기꺼이 대화에 끼워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이제야 조금 살맛 난다’는 느낌이 들면서 얼굴빛도 달라졌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로 향한 우리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뜻을 찾을 수 있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인간의 뜻인지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영성생활이 시작됩니다. 하느님과의 친밀한 대화도 가능해집니다. 신앙생활의 참 맛도 알게 되고 신앙도 성장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귀가 활짝 열리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보다 명료하게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 어떻게 해서든 우리 가까이 다가오시려는 하느님!

제가 몸담고 있는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예방교육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교육 대상의 개별화’, ‘1대 1 맞춤형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대 다수, 1대 그룹이 아니라 ‘나와 너’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우정관계 안에서 돈보스코 예방교육은 활짝 꽃피어납니다.

돈보스코와 동고동락했던 수많은 청소년들은 어떤 의미로 그의 독특한 교육 방식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돈보스코는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듬뿍듬뿍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대부분은 ‘돈보스코는 나만 각별히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해. 돈보스코의 마음 안에는 온통 나밖에 없을 거야!’ 라고 착각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고루 다 사랑하시만, 또 다른 한편으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십니다. 내게 다가오시는 모습이 얼마나 다정다감하신지, 나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대하시는지,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 사랑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한 사람을 치유하시는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하십니다. 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환자의 치유에만 전념하겠다는 예수님의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입니다. 비록 지나가다 만난 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오직 이 사람과만 개별적으로 만나겠다, 이 사람에게만 정성을 기울이겠다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환자를 위한 참으로 각별한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련의 치유과정도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치유되는 능력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환자의 두 귀에 넣으십니다.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까지 내쉬십니다. 이윽고 “에파타!”하고 외치십니다.

비록 간단한 접촉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과분한 은총입니다. 비참한 한 인생길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그 크신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 손을 펼치시어 부당한 한 인간의 신체에 접촉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가까이 다가오시려는 하느님, 어떻게 해서든 우리와 접촉하시려는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이 환자를 치유시킵니다. 결국 하느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한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결국 하느님의 다정다감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치유과정은 우리가 봉헌하는 매일 미사 때마다 다시금 반복됩니다. 말씀의 전례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친히 당신 손가락을 우리 귀에 넣으시어, 말씀 안에서 당신을 알아 뵙게 하십니다. 성찬의 전례 가운데 예수님의 몸과 피는 친히 우리의 오장육부 깊숙한 곳까지 찾아오십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는 치유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는 기적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 우리 역시 치유의 기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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