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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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72) 따뜻한 밥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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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있던 본당에서 달력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완성된 달력이 나온 것을 보지 못한 채 인사이동이 됐기에 혼자 속으로, ‘달력이 잘 나왔나!’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나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달력을 제작했던 디자인 업체의 사장 형제님이었습니다. 형제님께선 달력을 본당에 전달했고, 나에게는 자신이 직접 한 부를 전해 주고 싶다는 겁니다. 사실 경기도에 살고 계신 분이라 전라북도 고창까지는 운전해서 오기가 쉽지 않은 거리인데, 그것도 달력 한 부 때문에! 단지 우편으로 보내 주어도 될 일인데.

그 토요일 오전 10시 즈음 형제님은 달력 한 부를 가지고 찾아 왔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형제님께선 아침 일찍 출발해서 차도 막히지 않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겉으로는 다행인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좀 그랬습니다.

이른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차로 동네 앞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면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덧 내가 담당하고 있는 개갑장터성지에 도착했습니다. 형제님께선 몇 번이고 ‘점심시간이 다 되었고, 맛있는 식사하러 가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고, 굳이 외식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며칠 전에 선물 받은 ‘1-2인용 전기밥통’의 성능을 알고 싶고, 성지 사무실 냉장고에 5-6년 묵은 김치, 전주교구 어느 본당에서 축성식 기념 선물로 준 깻잎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형제님께 말했습니다.

“형제님, 이리 먼 길을 오셨는데, 제가 부탁하나 할게요.”

“뭔데요?”

“혹시 괜찮으시면, 뜨거운 밥을 지금 여기서 차려 드릴 테니 밖에 나가서 돈 쓰지 말고, 그냥 없는 반찬이지만 김치랑 깻잎으로 밥을 먹으면 안 될까요?”

“아니, 실은…. 신부님께 점심 대접을 해 드리려고 왔는데요.”

암튼 그 형제님의 미안한 마음은 살짝 접어 두고, 쌀을 씻어 전기밥통에 넣은 후 작동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개갑장터성지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이리저리 사진도 찍으면서! 그렇게 30분 정도 성지를 돌아본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갓 지어진 밥 냄새가 구수하게 났습니다. 이내 냉장고에서 김치와 깻잎, 그리고 김과 고추장을 식탁에 내놓았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여 국 대신 컵라면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다음 전기밥통을 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푸짐하게 펐습니다.

비록 일반 식당보다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신경을 쓴 식탁을 차려 우리는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지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특히 성지를 소개하는 리플릿 제작에 대한 어려움도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님께서 갑자기,

“신부님, 어떤 신자가 신부님께서 지어주는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오늘 이 밥값으로 뭐든 도와드릴 테니 말씀만 하세요.”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지난 번 달력 제작 때 고생해준 것이 고마워서 마음으로 뭔가를 해 드리고 싶어서 밥 한 끼 차려드린 것 뿐인데…. 그게 진심 감동이었다고 해주시니! 그리고 점심식사 후 형제님께 밑반찬을 좀 싸 드렸더니, ‘이거 가져가면 아내에게 혼난다’며 극구 사양하다가 마침내는 밑반찬에 덤으로 행복까지 싸들고 가는 듯한 얼굴표정으로 기쁘게 떠나셨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삶이라 그저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을 뿐인데, 뭔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덤으로, 선물로 탄생함을 묵상해 봅니다. 그러면서 선하고, 착한 교우분들의 마음을 묵상해 봅니다. 문득, 오늘도 밥 짓는 마음으로 성체성사에 집중하시는 신부님들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그 마음으로 신자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희망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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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2-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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