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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58) 네 마음 안에 그분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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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게임에만 빠져서 숙제도 하지 않는다고 아이 엄마가 상담을 부탁했다. 전문 상담사도 아닌 내게 무턱대고 청한 것을 보면 아이 엄마도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아이보다 아이 엄마의 훈육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엄마의 다급함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 상황이 아이들을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도 맞다. 코로나19 사태로 1년이 지나도록 학교생활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가 어디 나다니기도 어려우니, 아직 자율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로서는 손쉽고 재미있는 게임에 빠져들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우선은 아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몸을 좀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아침마다 산에 가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물으니 그러겠다고 한다.

날을 맞춰 아침에 데리러 오마 약속하고는, 내가 다니는 코스를 두고 아이에게 적당한 길도 미리 찾아 두었다. 마침 방학이라, 산행을 이어 가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말수가 너무 줄어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어른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한지 말을 얼른 꺼내지 못했지만 편안하게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아무리 침묵이 길어지더라도 말없이 기다려 주었고,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포콜라레운동에서 무지개색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정돈할 때 주황색은 ‘사도직’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 복음적 삶을 통해 진리를 증거하는 것인데, 사실 수줍음이 많은 나로서는 누군가를 교회로 이끈다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삶이 신앙에서 기쁨과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 아이의 삶도 거기에 원천을 두기 바랐다.

산길을 걸으며 특히 아이가 자연을 눈여겨보도록 도왔다. 자연이야말로 창조하신 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이라는 생각에서다. 아이가 물었다. “음…, 음…, 그런데 하느님이 먼저 있었어요? 아니면 나무나 풀이 먼저 있었어요?” 반갑게도 창세기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야기 끝에, 나는 오래 전에 내가 들었듯이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랑하심을,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그리고 바로 아이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심을 일러 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이가 방긋 웃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세상에 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만 보더라도 너를 창조하실 때 너만 사랑하시며 바라보신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날은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데요, 게임을 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도 자꾸 손이 가게 돼요. 그래서 휴대폰을 다른 곳에 좀 맡겨 놓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요.”라고 하며 게임을 끊는 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고, 숙제는 어떤 때는 어렵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빨리 못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랬다, 아이는 이미 자신의 문제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럴 때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아이 엄마에게도 어떤 경우든 아이의 변화를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하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주황은 빨강과 노랑이 어우러진 색깔이다. 곧 나눔을 뜻하는 빨강과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일컫는 노랑 사이에 있으니, 사도직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이를 계속해서 아낌없이 사랑하다 보면 차츰 아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고, 진리이신 그분을 따라 아이도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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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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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주 하느님 큰 권능을 쥐시고 친히 다스리기 시작하셨으니 저희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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