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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66) 초록으로 리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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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생활 속 영성 이야기’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참 신선하다고 느꼈다. 영성들이 수도원처럼 은밀한 곳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생동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를 나서면 그저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영성도 개념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소용이 없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의도로 읽혔기 때문이다. 설핏 생각하기에 영성이라고 하면 아주 영적인 부분만 다루는 듯하여 정신과 육신에 대해서는 등한시 할 것 같지만, 성자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을 귀히 여기시어 육신을 취하신 것을 보면 우리도 우리의 일상과 몸을 아껴야 하고 이 모든 곳에 영성이 스며들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포콜라레 영성에서 무지개색으로 우리 삶을 점검할 때 초록색 측면에서는 육신 생활과 자연에 대한 부분을 살핀다. 그래서 육신적 건강뿐 아니라, 수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생명의 문화를 증진하며,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보석 같은 봉헌의 가치 또한 소중히 여긴다. 아울러 환경이 인류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을 보존하고 이를 선용하는 일에도 힘쓰기를 권한다.

어릴 적 나는 좀 병약한 편이었다. 그런데 간호학을 전공하게 되어 건강을 잃은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호스피스 기관과 관계를 맺으면서 임종을 앞둔 분들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매 위에 장사 없다고, 나의 한계를 넘을 만큼의 업무에 시달리고 몇 번의 위기를 지나는 사이 약해진 기관지 탓인지, 기침이 멎지를 않아 일상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 그때 지인의 권유로 자연 건강법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 건강법이란 치료제나 보약을 먹으며 약해진 부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비움으로써 그동안 쌓인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체득하려니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해 왔음에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항상 인색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언니들이 “쟤는 매일 병원에 가면서도 한 번도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는다”고 했을까…. 지나고 보니 어쩌면 내가 내 몸을 나의 것으로만 생각한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시어…”라고 노래하면서도 정작 내 몸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지는 못했나 보다. 나를 객관화하여 주님의 도구로 바라보니 잘 돌보아야 할 까닭이 생겼다. 교회를 성령의 궁전이라고 하니 교회를 이루는 우리 자신도 그러할 텐데 이를 영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였을 뿐, 그동안 얼마나 홀대했는지 부끄러웠다.

자연 건강법을 실행해 보니 ‘비움의 미학’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몸을 비우자 몸에 있던 나쁜 것들도 빠져나갔는지 증상이 호전되면서 맑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육식을 줄이고 과식하지 않으며 전통 발효 음식을 선호하는 것은 이웃과 자연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친화적이기도 했다. 취지나 실천 측면에서 내게는 이 방법이 잘 맞았다.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을 많이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아프고 삶에 지친 내 이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라도 돕고 싶었다.

나에게 힘이 없으면 남을 도울 수가 없다. 아직은 더 형제들에게 봉사하며 살라고, 마치 용량이 다한 휴대폰을 초기화해 새롭게 사용하듯, 이렇게 생생한 초록으로 ‘리셋’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간혹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하루쯤 운동을 쉬고 싶거나 탐식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곧 나를 추스른다. 건강하면, 힘이 생기면, 이웃에게 봉사하기가 훨씬 쉬우니 이 몫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또 다른 뜻을 살도록 허락하실 때까지는….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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