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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93) 숨만 쉬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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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는 중학교 선생님 부부가 있는데, 그 부부에게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귀여운 딸이 있습니다. 그 딸과 대화를 나눌 때면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그리고 나와 가끔 인생 상담(?)을 몇 번 해서 그런지, 나를 보면 멀리서부터 뛰어와 내 품에 안기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의 부모는 ‘허허…’ 웃습니다. 또한 그 부부는 평소 딸을 자유롭게 방목(?) 합니다. 딸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와 줄 정도지, 그 외에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어느 날, 나는 그 부부와 모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 전 딸에게 전화가 왔는지, ‘그래, 나도 사랑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딸이 ‘저녁 7시까지 친구 집에서 놀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사랑한다고 말하더랍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말했습니다.

“두 분은 딸을 참 잘 키우는 것 같아요.”

그러자 부부는 중요한 비밀(?)을 말해 주었습니다. 딸의 임신 사실을 전혀 몰랐을 때에 자매님은 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답니다. 당시 배를 타고 갔었는데, 유난히 배멀미를 심하게 해서 멀미약을 조금 과하게 먹었답니다. 그리고 한라산 등산을 하는데 너무나 힘들어 이런저런 약을 먹으면서 산행을 했었답니다. 그 후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몸이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그 딸의 임신 소식을 들었답니다. 순간, 수학여행 동안 약 먹은 것을 가슴을 치며 후회를 했었답니다.

출산 날이 되었고 딸이 태어났는데, 딸아이가 숨을 쉬지 않더랍니다. 의료진들은 아기를 숨쉬게 하려고 등짝을 때리며 별별 수단과 방법을 다 썼는데도, 숨을 쉬지 않았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부부는 ‘우리 딸이 이렇게 죽는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단지 몇 분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하늘나라로 가는구나.’ 아이 아빠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아기야, 제발 숨만 쉬어 주렴, 그냥 숨만 쉬어 주렴’ 하며 바라만 보았답니다.

병원 측에서도 혹시 골든타임을 놓칠까, 큰 병원으로 아이를 옮길 준비를 하면서 앰뷸런스도 미리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부부의 생각으로는 만약 아이가 앰뷸런스를 타고 가면, 그 길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제발 숨만 쉬어 주렴’ 하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처음으로 딸이 숨을 쉬더랍니다.

아무튼 그날의 간절한 기도대로, 그 부부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래, 숨만 쉬어 주렴’ 하는 마음으로 딸아이가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해주며 살고 있었습니다. 공부하고 싶다면 공부하게 해주고, 놀고 싶다면 마음껏 놀게 하고! 그런데 놀라운 건 딸아이 스스로 더 잘 자라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답니다. 그저 숨만 잘 쉬어 주면 고맙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키웠을 뿐인데 말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딸의 계획이 아닐까! 자신의 아빠, 엄마가 될 사람에게 자기를 자유롭게 키워주지 않을 거면, 나는 이렇게 숨을 안 쉴 거라고! 암튼 그 식구들은 서로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으니 각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이런 묵상을 해 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 그들이 과연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제대로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 옛날, 태어나 준 것만으로 고마운 소중한 누군가가 지금은 우리 뜻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화를 내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힘들어하지 않는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정녕 그 사람 방식대로 숨을 쉬고 살아가게 놓아둘 수 있다면 그건 세상을 잘 사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죠?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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