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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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95) ‘변덕이 죽 끓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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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수도권 지역의 신자들을 어떻게 하면 ‘고창’과 개갑순교성지로 순례를 오게 할까 고민을 해 보지만, ‘거리가 멀다’는 생각은 나 스스로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창’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책으로 내면, 그 책을 접하는 사람들이 ‘고창이 참 좋네, 어디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을 먹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이 고창에 온다면 마지막 발걸음은 성지로 향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진작가와 ‘사진묵상집’ 발간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의 뜬금없는 제안에 선뜻 동의해 준 사진작가는 서울에서 고창으로 여러 차례 내려와, 며칠을 묵으면서 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과 농촌의 삶,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고창’의 모습을 영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진집을 만들고자 사진작가와 나는 많은 고민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작품 사진에 나의 짧은 묵상 글을 실어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외양간경당 축복식 날, 전주교구 주교님과 수도회 총장 신부님, 고창 군수님께 사진집을 선물로 드렸고, 그 나머지는 구입 신청을 받고 판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공식적으로 구입 신청을 받았는데 일주일 만에 무려 400여 권의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처음 한 권씩, 구입 신청을 받을 때에는 한 분, 한 분에게 깊이 감사드렸는데, 차츰 많은 수의 신청을 받다보니 즐거워야 할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주문한 분의 연락처와 주소, 우편번호를 하나하나 찾아서 기입하고, 2권 이상 신청 받은 분량은 개별 포장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주소를 기입한 문서를 프린트로 출력하고 주소를 칼로 오려서 발송 봉투나 박스에 붙이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지 사무실은 우편물 발송 공장이 되었습니다. 쓰레기통은 가득 찼고 여기저기 풀과 가위, 긴 자, 이면지 등이 굴러 다녔습니다. 처음 책 주문을 받을 때부터 곧바로 발송 작업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구입 신청을 다 받은 후 한꺼번에 발송 작업을 하려다 보니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렇게 힘든 작업을 다 마친 뒤 우체국에 가려고 책들을 차에 싣는데, 400여 권의 책 무게는 정말 무거웠습니다.

발송할 책들을 차에 실은 후 시동을 가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 너무나 힘들다!’ 사실, 일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혼자서 그 모든 일을 하려다 보니 서서히 지쳐갔던 것입니다. 우체국에 도착한 후 그 책들을 우편물 발송 코너로 옮기는 것만도 힘겨운 일이 되었습니다. 녹초가 된 마음에서는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렇게 발송 작업까지 다 마치고 성지 사무실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잠깐 프랑스에서 살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신학자 신부님께서 시골 본당에서 성탄 미사를 준비하던 장면입니다. 대학자가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사목하는 것에도 놀랐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프랑스교회의 현실 속에서도, 얼굴에는 미소와 평온함을 간직하며 살고 계신 모습에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 또한 저 신부님의 삶을 닮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날! 그 오래전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순간 나는 애써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언제 그런 다짐을 했냐는 듯이…!

그러다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외양간경당 축복식의 감동으로 인해 앞으로 성지 담당자로서 좀 더 겸손하게, 친절하게, 온유하게 살아갈 결심을 하던 모습이…! ‘휴….’ 변덕이 죽 끓듯 한 내 모습을 생생히 보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결심도 많이 하고, 불평불만도 많이 하고… 이 변덕을 어이할꼬…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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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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