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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84) 기쁘게 아버지께 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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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계절 중에서 여름이 가장 좋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에 솜뭉치처럼 탐스러운 뭉게구름들이 어우러진 하늘을 볼 때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유년 시절 주택에서 살던 동네 이웃들과의 정겨운 기억들이 떠올라 여름은 언제나 첫 사랑 같은 설렘의 계절이다.

그렇게 날아갈 듯 좋은 기분과 컨디션으로 맞이한 8월 첫째 날, 뜨거운 햇살을 벗 삼아 신나게 집안일을 하는 중 허리를 숙이는데 갑자기 딱! 소리가 나면서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렸다. 식은땀이 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아~ 아프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 할 일이 너무 많은데…’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낮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면 놀랄 것 같아 그렇게 한참을 꼼짝 않고 손가락을 세어 가며 아프지 않도록 해 주십사 하는 지향으로 묵주 기도를 바치고 조심스레 움직여 보았다. 여전히 심한 통증이 느껴져 할 수 없이 남편을 깨우고, 친정 언니에게도 연락을 했더니 진통제를 처방받아 왔다.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져, 친정집 취침 당번이기에 친정에 가서 잠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새벽 3시쯤 일어나려는 순간, 비명 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칼에 베이는 듯 심한 고통과 허리가 끊어져 나가는 통증에 침대 위에서 꼼짝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그동안 아픈 것은 나름 잘 견디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교만이었다. 내가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서웠다.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휴대전화는 손이 닿지 않는 탁자 위에 있어 친정 엄마의 요양 보호사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6시간 10분을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누워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다고 자신했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화장실도 못 가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건강 또한 내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요양 보호사가 도착하여 화장실에 가는 것을 부탁드리고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더 심한 통증에 그대로 쓰러져 119를 불렀고 호전되지 않아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기간 2주 동안 움직일 때마다 칼에 베이는 듯 아팠던 허리 통증이 올까 봐 겁이 나 ‘주님!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성모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세요’라고 수십 번을 청하게 되면서, 고통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을 자부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일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또다시 올지도 모를 고통이 무서워 움직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병명을 알고 있는 이 상황의 고통도 이렇듯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순교 성인들은 그 끔찍한 고통을 어찌 참고 견디어 내셨을까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너무 죄스러워 소리 내어 울었다.

우는 동안 지나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자비로운 주님께서는 나에게 편안한 숨을 쉬게 해 주셨고,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셨으며,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감동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과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가족과 친구까지 주셨음을 알았다. 그러기에 지금의 고통 또한 축복임을 깨닫고 오롯이 주님께 의탁하는 나로 변해야 함을 깨달았다.

칼에 베이는 듯 참기 힘든 아픔마저도 기쁘게 봉헌하면서 ‘주님. 이 고통을 연옥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그동안 주님 마음 아프게 해 드려 죄송하고 사랑하고 사랑합니다’라고 기도드리며 두려움을 의탁으로 이겨내려 노력했다.

일상생활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오롯이 하느님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기쁘게 병원 치료를 1차로 마치고 가정과 직장에 복귀하니, 많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기쁘게 아버지께 청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건강과 지혜를 주실 것이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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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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