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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18)엄마는 로봇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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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좀더 위에. 아니 아래, 더 아래. 좋아! 어어, 거기 거기. 조금만 더 옆에.”

잠자리에 들기 전, 지성이가 배를 깔고 누워 등을 보인다. 등을 긁어달라는 건데, 가려운 부위를 알려주는 말이 참 정확해서 웃음이 났다.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면서. 그런데 엄마의 손길이 좋은지, 진짜 등이 가려운지 모르겠다. 요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을 긁어달라고 하는 걸 봐서는 그냥 엄마의 손길이 좋아서인 것 같다.

세 살 서진이가 옆에 눕는다. 형을 똑같이 따라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서진이는 손으로 긁어야 할 곳을 가리킨다. 팔이 두 개밖에 없는 나는 두 손으로 두 아들의 등을 박박 긁어준다.

이불 위에 쪼그리고 앉아 두 아이의 등을 긁어주다 보면, 갑자기 내 발등이 간지럽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뜬금없이 묶고 싶어진다. 잠시 멈추고 내 할 일을 하면, “왜 멈춰? 엄마, 계속 긁어!” 한다. 쌀쌀맞다. 여러 번 겪었으므로 차분히 응대한다. 인내심을 담당하는 근육이 한 뼘 늘어난다.

“엄마는 로봇이 아니야. 엄마도 간지러운 곳이 있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말한다.

“엄마가 로봇이면 좋겠네. 아빠가 리모컨으로 조정하고. 그럼 재밌겠지?”

“그래, 재미는 있겠다만은…” 하는데 영국 드라마에 나온 로봇 엄마가 떠올랐다. 로봇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데 힘들어하지도 않고,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 딸은 인간 엄마를 향해, “엄마보다 로봇이 낫다”고 쏘아붙이는 장면이었다.

두 아들이 베개 싸움을 시작했다. 큰 아이는 파랑, 둘째는 분홍 베개인데 둘째가 얼마 전 파란색에 눈을 떴다. 형이 파랑 베개에 누울라치면, 둘째가 몸을 잽싸게 던져 그 작은 베개를 품에 안고 엎드린다. 그 위로 뼈가 한 10㎝ 더 큰 형이 덮친다. 동생이 결국 힘겨루기에서 지고, 울음을 터뜨린다. 얼른 불을 껐다.

희미해진 불빛 사이로 베개를 뒤바꾼 척을 하고 둘째를 달랬다. “서진아, 이게 파란색이야!” 하며. 지성이에게 눈을 찔끔 감고 타일러본다. 속지 않는다. 희미한 불빛으로 색깔을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뜬다. 이미 자기 손을 떠난 베개가 파란색이라는 확신이 있다.

긁고, 던지고, 때리고, 부서지고, 뛰어내리는 나날의 또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 우리 부부는 먼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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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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