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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19)여름같던 아이가 가을처럼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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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머리를 감고 있는데, 지성이가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엄마, 저 쉬 마려워요. 들어가도 돼요?”

머리에 샴푸 범벅을 하고 머리카락을 비볐다. 옆에서 시원한 오줌 줄기 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 아니 며칠 전만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살을 만지며 엄마의 사랑을 촉감으로 채우던 아이가 어째 오늘은 의젓하고 씩씩하다. 내가 이부자리에 없었는데도 혼자 일어나 쉬를 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이건 뭐지?’

아침마다 울고불고 떼를 쓴 게 6년.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하루도 안 빠지고 울고 보챘다. 심지어 머리를 감는 도중에 내 무릎을 붙잡고 떼를 썼는데 말이다. 머리카락을 말리고 나왔는데, 지성이가 멍한 표정으로 아빠와 나란히 앉아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출근할게” 했더니, “엄마 나갈 때 ‘사랑해’ 하고 말해주세요” 하며 한 번도 징징거리지 않고, 보내주는 게 아닌가.

내 몸에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여름날의 지성이가 떠나버렸다. 여기 지금 이 공간에 가을의 지성이가 찾아왔다. 뜨거웠던 여름 햇살의 끝자락이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데리고 오듯이 지성이가 큰 거다. 같이 붙어 있느라 참 더운 여름이었는데…. 혼자서 의젓하게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게 놀라웠다. 누가 이 아이를 키웠나. 적어도 이 순간만큼, 나는 아니다. 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과 함께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 삶에 밀물처럼 들이닥쳤던 아이가 이제 썰물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금 후, 동생 서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뒤뚱뒤뚱 거실로 걸어 나온다. 기저귀가 따뜻한 오줌으로 꽉 차 엉덩이가 더 무겁다. 지성이가 일어나자마자 먹을 것부터 찾는 동생을 데리고 냉장고 앞으로 간다.

“서진아, 오늘은 치즈가 없으니까 이거 먹을래?”

“웅, 엉아.”

둘이 냉장고에서 꺼내 든 건 남편과 지난 저녁에 맥주 안주로 먹었던 짭짤한 쥐포다. 쥐포를 사이좋게 반씩 갈라 한 입씩 문다. 입안에 짠내가 진동을 한다.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점호할 때 기숙사 방송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룸메이트들과 그 말을 들으며 웃어넘겼다. 마치 “걱정거리가 있을 땐 휘파람을 부세요”처럼, 그 시절엔 시시하고 가벼운 말이었다. 지성이가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삶을 일구는 사랑스러운 동작들을 본다.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을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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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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