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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84) 낙엽귀근

죽은 친구와 함께하는 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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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자오는 공사판에서 인부로 일하다 만난 친구 리우콴유가 죽자, 그 시신을 친구의 고향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시신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씌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버스에 태웠는데, 그만 버스에 강도들이 들이닥친다. 라오자오는 강도의 우두머리에게 죽은 사람의 돈도 가져갈 거냐고 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만다. 놀라서 연유를 묻는 강도에게 이 친구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을 거라며 사연을 말하는 라오자오. 운 없게도 일하다 죽은 게 아니라 술 마시다 죽었다고, 친구가 가진 5000위안(약 87만 원)은 맘씨 좋은 사장님이 보상금으로 준 거라서 그의 처자식에게 전달해 줘야 한다고, 자신은 친구를 고향에 꼭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덤덤하게 털어놓는다. 이야기를 들은 강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숙연해진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이게 바로 낙엽이 뿌리로 돌아간다는 그것이군!” “맞습니다. 저랑 완전히 똑같은 생각입니다.” 라오자오는 응답한다.

영화 제목 ‘낙엽귀근’의 뜻이 강도와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이다. 생을 다한 나뭇잎이 자기가 본디 났던 곳으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죽은 친구의 귀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라오자오의 여정을 담고 있다.

둘이 함께 일했던 선전(深)시에서 리우콴유의 고향 충칭(重慶)시까지의 거리는 무려 1400㎞나 된다. 그러나 시체를 태웠다는 것이 들통 나 버스에서 쫓겨났고, 수중에 있는 돈은 겨우 500위안(8만 7000원)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다가 도둑을 맞아 그는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시신을 등에 업고 도보로 그 먼 길을 가게 된다. 급속한 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은 농인(農人)이 고향을 떠나 먼 도시에 와서 일용직 공인(工人)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애환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렇지만 친구의 시체를 업고 간다는 설정은 참으로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라오자오는 누구나 다 꺼리는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면서 자신의 신념과 의리를 지켜나가는 인물이다. 술을 마시다 객사한 친구의 불행도 그렇지만, 객지에서 그렇게 고생하고도 무일푼인 라오자오 자신도 꽤 불행해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은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여정에서 그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은 우리네 인생의 여러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난한 주인공은 놀랍게도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도 하고, 본인이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불가능해 보였던 이 여정을 영화 말미에서 의미 있게 마무리하게 된다.

낙엽귀근은 그 자체로 매우 영성적인 말이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이 말씀들과 일치하지 않는가?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와 하느님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있기에, 라오자오의 이야기는 우리가 돌아가야 뿌리이며 영원한 본향인 하느님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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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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