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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112)더 파더

치매 환자 시점에서 느끼는 공포와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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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와 치매 인구가 늘어나면서, 2016년 말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는 69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2030년 127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치매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치매를 다루는 장르와 매체도 다양해졌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영화 ‘더 파더’도 치매에 관한 이야기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자신이 쓴 동명의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지금까지는 치매로 인해 무너져가는 인간을 주변 사람의 시선으로 관망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면, ‘더 파더’는 철저하게 치매에 걸린 사람의 편에서 서사가 진행된다.

영화는 클래식이 흐르는 가운데, 딸 ‘앤(올리비아 콜맨)’이 바쁘게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아버지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집이다. 관객은 영화에 흐르던 클래식이 안소니가 듣고 있던 음악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안소니는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영화의 서사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앤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어 파리로 곧 떠날 거라고 한다. 딸은 주말마다 방문하겠다고 하지만, 안소니는 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때부터 안소니는 앤이 자기 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기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상황이 의심스럽다.

관객은 헛갈리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안소니와 앤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할 것인가? 관객은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된다. 앤이 안소니를 해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순간,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에 감독의 영리함이 있다. 그는 치매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시간적 혼돈을 ‘스릴러’라는 장르를 이용해 관객들이 치매를 겪는 주인공을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전율을 느끼도록 설계했다.

전혀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복되고, 관객은 한 치 앞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내러티브에 빠져들게 된다. 혼란을 유발하는 내러티브와 계산된 스릴러적 요소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뒤섞이고, 드라마와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의 변주와 모든 예상을 뒤엎는 전개는 강렬하고 압도적인 몰입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이것에 대해 “관객이 미로 속에서 손으로 벽을 더듬어 길을 찾는 기분을 느꼈으면 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라는 것이 놀랍다.

안소니는 단순히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는 화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억과 맞서야 하는 끝없이 고독한 싸움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더 파더’는 나이 듦과 인생에 대한 통찰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치매라는 예기치 못한 불청객으로, 삶의 혼란을 느끼는 아버지. 나약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딸.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세월이 흐르면, 부모의 돌봄을 받던 자식은 부모의 보호자가 되고, 부모는 자식에게 의존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파더’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2021년 4월 7일 개봉

서빈 미카엘라(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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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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