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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125)갈매기

성폭력에 맞선 중년 여성의 날개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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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갈매기’는 한평생 재래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아온 주인공 ‘오복’이가 자신의 일터인 시장 내 상인에게 험한 일을 당한 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스스로 그 일을 들추어내며 자신의 존엄을 위해 당당하게 맞서는 중년여성의 용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오복이 겪은 사건을 소재로 하여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과 집단적 이기심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과 대비시켜도 같은 주제의식과 함께 보편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뛰어난 통찰력을 느끼게 한다.

가해자가 시장의 재개발 이권에 목소리를 내며 상인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이유로 그를 감싸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평소 형님 동생 하며 가족처럼 지내 온 오복의 상처는 개의치 않고 외면해버린다. 더욱이 나이가 든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며 오복의 하소연을 무시하는 비정함을 보인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온 오복은 우유부단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가장이다. 세 딸을 키우느라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희생적인 어머니이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밝고 낙천적인 성격인 오복은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딸들에게도 부모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믿음직스러운 엄마이다. 영화의 타이틀을 ‘오복’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주인공의 이름이 강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지금은 60대 아줌마가 된 오복이지만 그녀의 이름을 지어 준 부모님은 ‘오복’의 의미대로 오복이에게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오복은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살라’는 것과 달리 복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 체홉의 ‘갈매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영화는 희곡의 내용과 다르지만, 인간 내면에 숨기고 있는 속내를 드러내며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영화 ‘갈매기’는 주인공 ‘오복’이 술자리에서 피해를 보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려는 것은 성폭력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후 가해자와 시장 동료들, 심지어 가족까지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관객은 자신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비굴한 이들에게 맞서는 오복을 지지한다. 배우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아줌마 오복의 순수함을 보며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고, 타협하기보다 맞서 싸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깨닫게 한다.

영화 ‘갈매기’는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받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을 비롯해 국내외 유수 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주제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작품의 의도를 힘 있게 보여준 김미조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주인공 오복(정애화 역)을 비롯한 배우, 프로듀서, 촬영, 음악 등 모든 스태프가 하나가 되어 작품을 충분히 소화한 부분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 있다. 이러한 독립영화들의 활약은 미래 한국영화의 가능성과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7월 28일 극장 개봉




이경숙 비비안나(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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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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