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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사제] 고 김학용 시몬 신부 - ''가별이는 신부 되면 좋겠다''

신교선 신부(인천교구 김포본당 주임, 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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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용 신부가 주임으로 사목한 풍수원성당 전경. 원 안은 김학용 신부.
 

    사제수품 30주년이 지난 오늘에도 내 기억 속에는 김학용(시몬/춘천교구, 1910~1963) 신부님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신부님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춘천교구 풍수원본당 주임(1943~1963)으로 사목하셨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새점터공소는 초창기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 마을을 이루고 살던 교우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20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잠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일 년에 두 번 부활과 성탄 판공 준비를 위해 신부님이 우리 공소를 방문하실 때는 큰 경사라도 난 것처럼 축제 분위기가 된다. 새점터공소에 아담한 경당이 세워지기 전에는 신부님이 우리 집에 머무시면서 판공을 주셨다.
 검은 양복에 하얀 로만칼라를 하신 김학용 신부님은 그 첫인상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토록 근엄하면서도 인자하신, 그분처럼 멋지고 권위가 느껴지는 분을 본 적이 없다. 마치 천상의 빛이 내 눈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신부님은 나를 신비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아무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린 나로서도 최고의 인격자요, 최고의 신앙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부모님과 우리 식구들이 모여 앉아 매일 드리던 조과와 만과(아침ㆍ저녁기도)도 신부님과 함께 함으로써 더욱 빛을 발했다.
 김 신부님은 어느 해 부활판공을 마치고 공소를 떠나시기 전 나를 무릎에 앉히고 말씀하셨다. "공소집 아들 가별이 참 잘 생겼다."(예전에는 `가브리엘`을 `가별`이라 불렀다.)
 지금도 `가별이 참 잘 생겼다`는 김 신부님의 말씀이 내 귀에 울려오는 듯하다. 어린 내게 신부님의 말씀 한 마디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마음 속 깊이 새겨졌으면 50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분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할까?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지만 한때는 내가 정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이후에도 사제의 길을 걸어오면서 외롭고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신부님의 말씀이 영락없이 떠올라 내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 신부님은 또 그 해 성탄판공 때도 나를 무릎에 앉히고 "공소집 아들 가별이는 신부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감을 잡았던 것 같다. 성령께서 선사하시는 직관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때부터 사제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이후로 부모님은 물론 동네 어른들도 내게 "가별이는 신부 될 거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김 신부님은 이미 오래 전에 선종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에 각인된 신부님의 모습을 내 사제생활의 멘토로 삼고 살아왔다.
 몇 년 전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선종 150주년을 앞두고 프랑스 사제들에게 피정강론을 했던 브리지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나는 어린이미사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지요. `사제가 누구인지 간단히 말해볼 사람 있어요?` 잠시 후 어떤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사제는 다른 사람들의 양초에 불을 켜주는 사람입니다` 라고 답하는 거예요. 그래요. 사제는 이웃에게 희망을 일깨워주는 사람입니다. 희미한 그림자 속에 헤매는 이들에게 불을 밝혀 주님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입니다."(Briege, McKenna, Miracles Do Happen, Dubli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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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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