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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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해 기획-사제(司祭)의 사제(師弟)] 2. 성 필립보 네리 ① ‘엄친아’ 필립보

쾌활하고 신심 깊었던 피렌체 유명인사. 중산층 가정 맏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늘 재기 넘치고 라틴어 신앙서적·우화 즐겨 읽어. 도미니코수도회 교육 받으며 성장. 사제 될 것이라는 주위 예상 깨고 사업가 되기 위해 17세때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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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필립보 네리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지오반니 티에폴로 작).
필립보 성인은 어린 시절 도미니코회 수도자들로부터 교육 받으며 신심의 깊이도 갈수록 심오해졌다.
 

“따라 하기 힘들어요.”

비안네 성인을 불편해 하는 사제들이 많다. ‘너무’사제답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해성사 집전, 철저한 강론 준비, 시간날 때마다 기도를 바치는 그 신앙 열성을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필립보 네리 성인에게 눈을 돌려 보면 어떨까. 비안네가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한 근엄한 사제라면, 필립보 네리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괴테(1749~1832)는 필립보 네리에게 “유머 감각 풍부한 성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쾌활한 성격의 필립보 네리는 깊은 영성을 늘 재기 넘치는 연설로 표현했다. 동시대 사람들은 그런 필립보 네리를 “매력 넘치는 인품을 지닌, 사람을 저절로 끌어들이는 능력을 가진 성인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교회는 그래서 필립보 네리를 ‘교회 역사상 가장 명랑한 성인’이라고 기억한다.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다? 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지독한 편견이다.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인류 역사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 필립보 네리가 그렇다. 필립보는 151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중산층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건축업자의 딸이었다. 귀족 가문이었던 아버지는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은 땅도 있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생계에 큰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립보가 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이후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필립보는 이 새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새어머니는 사랑이 넘치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새어머니는 필립보를 친자녀처럼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 결과, 필립보는 어린 시절부터 피렌체 사교계에서 ‘착한 아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착하고 활달했던 성격의 필립보에겐 당연히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 앞에서 필립보는 늘 골목대장이었으며, 항상 목소리를 높여 ‘까르르’ 웃었다. 신심도 뛰어났다. 8살도 채 되지 않은 이 소년은 거의 매일 침실 창문턱에 기대서서 명상에 잠기곤 했다. 특히 시편을 자주 암송했다.

이런 필립보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내 아이가 필립보처럼 착하고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필립보는 소위 피렌체판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였던 셈이다.

비안네 성인이 라틴어 공부 때문에 고민했지만, 필립보는 정반대였다. 라틴어에 능통했다. 그리고 라틴어로 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지적 능력을 높여나갔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책 중에는 영적 독서 이 외에도 우화집이 많았다. 그는 우화집에 나온 익살스런 이야기와 농담을 어른이 된 후에도 자주 인용하곤 했다. 필립보는 천성적으로 ‘신명’이 있는 사람,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적절한 유머 한마디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필립보는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도회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특히 도미니코회 수도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성장한 후 “선(善)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라틴어 실력도 더욱 늘었으며, 신심의 깊이도 갈수록 심오해졌다. 필립보는 어느덧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놓치기 아까워하는 인재로 성장했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 그리고 깊은 신심에 풍부한 유머감각까지. 사제가 되기에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필립보는 전혀 뜻밖의 선택을 한다.

어느 날 친척 아저씨가 편지를 보내왔다. 아들이 없었던 그 아저씨는 자신의 사업을 물려줄 후계자가 필요하다며 필립보를 양자로 삼겠다고 했다. 자신의 곁에 있으면 사업을 가르치고,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필립보는 그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필립보를 가르치며 우정을 쌓아왔던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은 의아해한다.

“라틴어도 잘하고 시편을 즐겨 읽고 신심도 깊은 네가 장사꾼이 된다고?” 필립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가족들과도 마지막 만찬을 하며 이별을 했다. 여동생이 과자를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오빠는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겠지? 우리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래. 난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게. 우리 또다시 만날 수 있어. 약속할게.”

하지만 필립보는 이후 여동생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피렌체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찬을 마친 그 이튿날 아침, 필립보는 부모와 작별한 뒤 집을 나섰다. 1532년 가을 어느 날, 필립보는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피렌체를 떠났다.

▤ 성 필립보 네리가 남긴 말

- 안심하여라. 머지않아서 네 자신을 완전히 바로잡을 것이다.

-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인생이 그대들에게 미소짓고 있으며, 황홀한 미래가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축복받은 것은 앞으로 선행을 행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 기쁘게 지내라, 그러나 죄를 짓지 말라.


우광호 기자
( woo@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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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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