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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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가 갇혔던 필리피 감옥
2000년 전에도 귀신은 있었다.
사도행전 16장 16-40절에 바오로와 필리피 귀신의 흥미진진한 한판 승부가 묘사되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필리피에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는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주인이 있었다. 주인은 이 귀신들린 여인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점을 봐 주고 돈을 벌었다. 어느 날 바오로와 동료들이 필리피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귀신들린 여인이 바오로를 따라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한두 번 그러다 말지 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바오로를 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바오로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길거리에서 여인이 또다시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르자 바오로가 뒤를 확 돌아보며 소리쳤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가라!”(사도 16,18)
그러자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신이 빠져나간 것이다. 바오로의 퇴마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묘한 곳에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귀신이 빠져나간 후 신통력이 사라져 여인이 돈벌이를 못하게 되자, 여인의 주인이 화가 났다. 귀신들린 여인, 아니 귀신 빠져나간 여인의 주인은 곧바로 관청으로 달려가 ‘바오로가 민심을 흉흉하게 한다’며 고발장을 접수시켰다. 여인의 주인은 평소 관리들을 잘 관리했던 모양이다. 관리들은 바오로의 반론은 듣지도 않았다. 매질하고 발에 사슬을 채워 바오로 일행을 감옥에 가두었다.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사도 16,24)
여기서 ‘차꼬’는 족쇄나 수갑의 형벌 도구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인데, 바오로 가 찼던 것은 쇠사슬(루카 8,29)이나 놋쇠로 만든 족쇄(2사무 3,34)가 아닌, 나무로만든 족쇄였다.
어쨌든, 바오로가 감옥에 갇힌 이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지진이 일어나 감옥 건물이 우르르 흔들리더니 모든 감옥 문이 열리고 차꼬가 저절로 풀린 것이다. 이에 감옥 간수가 무서워 벌벌 떨면서 바오로 앞에 엎드렸다. 바오로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했고, 간수는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사도 16,25-34 참조)
이처럼 괴이한 일이 일어난 데다, 죄 없는 사람을 가둬 놓는 것이 미안했을 것이다. 바오로가 말 한마디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소문도 꺼림칙했을 것이다. 날이 밝자 관리들은 바오로에게 석방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바오로는 석방을 거부한다. 감옥 바닥에 주저앉아 농성에 돌입한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은 채 공공연히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슬그머니 내보내겠다는 말입니까? 안 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사도 16,37)
큰소리치는 바오로의 모습에 관리들은 움찔했고, 결국 직접 바오로를 찾아와 사과하고, 풀어주었다. 이것이 이른바 바오로의 필리피 투옥 사건 전말이다. 그리스도교 유럽 복음 선포의 고난이 시작되는 출발점 필리피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큰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오로는 고초를 겪었던 그 필리피에서 기쁨의 영성을 선포한다. 이는 필리피 신앙인과의 각별한 관계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바오로가 쓴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다른 서간들과 달리, 신자들을 꾸짖는 강도가 약하다. 필리피 교회는 코린토, 테살로니카 등 다른 교회들처럼 말썽이 일어나는 곳도 아니고 분열이 심했던 교회도 아니다. 바오로 사도와 함께 꾸준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했던 교회다. 그리고 필리피 신앙인들은 늘 바오로를 걱정해 주고, 복음 선포에 적극 협력했다.
“여러분 외에는 나와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테살로니카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두어 번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필리 4,15-18)
바오로는 다른 교회로부터는 예물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테살로니카 교회에 머물 때도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주는 예물이 아닌 필리피에서 보내온 예물을 받아 생활했다. 이는 필리피 신자들이 뒤통수 치지 않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신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필리피 교회 신자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