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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위1동 선교본당 신자들이 이강서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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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도, 오르간도 필요없다. 작은 제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20여 명 신자가 서울대교구 장위1동선교본당(주임 이강서 신부) 신자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성북평화의집에서 활동하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들의 요청으로 설립된 장위1동선교본당은 빈민사목위원회 소속 선교본당 중 막내다. 이미 재개발이 다 끝나고 활동가들이 지역주민과 오랜 시간 함께한 다른 선교본당들과 달리 장위1동 선교본당은 활동가도 없고 복음화위원회도 꾸려지지 않은 걸음마 단계의 선교본당이다. 뉴타운 재개발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도 이 본당의 특징.
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점은 여느 선교본당들과 다를 바가 없다.
"공동체 인원이 적으니까 내가 분담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좋아요. 신부님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김길룡 스테파노, 47)
신자들 간에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큰 본당에서 미사 참례만 겨우 하던 신자들은 이곳에 와서 존재감을 찾기도 한다. 미사 후 함께 식사하고 차 한잔을 마시거나 맥주 한잔을 나누는 것도 작은 기쁨이다.
"살면서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이 이 공동체를 통해 서로 격려받고 위로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신학생 시절 달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정일우(예수회) 신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돼 빈민사목에 투신하게 된 이강서(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주임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빈민사목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느낀다고 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빈민지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가난한 사람 등쳐먹으러 왔느냐?"는 등 험한 소리와 의혹의 눈초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오해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성북 평화의 집에서 봉사자로 일하다 지금은 실무자로 일하는 박화자(도미니카, 46)씨는 "매일 무료급식 봉사에, 한달에 한두번씩 15가정을 방문해 말벗봉사 등을 한다"며 "할머니들이 반가워하시며 껌 하나, 사탕 하나씩 쥐어주실 때면 힘들어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화의집 도움으로 뒤늦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한 할머니는 그 고마움을 전하고자 월곡동에서부터 수박하나를 짊어지고 오기도 했다.
홀몸 어르신이 많은 이 지역에서 명절이면 떡과 전을, 복날이면 닭을, 동짓날이면 팥죽을 나누는 평화의집 가족들과 한밤중이라도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들쳐업고 병원으로 향하는 이 신부는 이제는 이곳에서 가족같은 존재다.
재개발을 앞두고 재개발 바로알기 설명회 등 주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본당은 앞으로도 주민들을 이끄는 것이 아닌,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말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