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학. 기술 발전과 윤리. 이들을 한데 아우르며 최첨단 생명윤리 기술 발전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사제를 만났다. 미국 예수회 케빈 피츠제럴드 신부<사진>다. 조지타운대 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학적, 윤리적,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임상의료윤리 자문가다. 피츠제럴드 신부는 코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예수회에 입회했다. 이력엔 신학석사, 생명윤리학박사, 분자유전학박사가 나란히 따라다닌다.
피츠제럴드 신부는 5월 20일 가톨릭생명윤리소가 주최한 ‘임상 현장을 위한 윤리 자문의 현재와 미래’ 학술대회 발제를 맡아 방한했다. 피츠제럴드 신부는 임상의료윤리 자문의 필요성에 관해 “임상의료윤리 자문은 환자의 바람과 가치관, 생물학적 상태, 의료인의 뜻과 판단 등을 반영한 ‘좋은 의료’를 찾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좋은 의료, 최선의 선택 위한 지속적 노력
“좋은 의료가 무엇인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사람마다 다 다를 겁니다. 환자 본인이 느끼는 것, 가족이 생각하는 것, 의료진이 고려하는 게 다 다르니까요. 의료진 사이에서도 고려 사항이 갈릴 수 있습니다. 의료에는 선택이 뒤따르는데 임상의료윤리 자문은 의료진과 환자, 환자와 가족, 또 의료진 간에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도록 도우며 최선의 선택이 이뤄지도록 합니다.”
피츠제럴드 신부는 “의료 현장에선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기에 때론 갈등을 일으킨다”면서 “무엇이 의료인으로서 지금 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인가를 항상 떠올려야 하고 그것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임상의료와 관련한 자문을 시작했다. 지금은 법 제정을 통해 모든 의료기관에서 임상의료윤리 자문을 의무화했다.
피츠제럴드 신부는 “현장에서 환자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배운다”고 했다. 새로운 치료법 연구와 개발에 매달려 자칫 ‘탁상 연구’에 빠질 위험에 있는 학자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건 병상에 누운 환자들이다.
“과학자와 의료진은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면 그 효과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이론적으론 완벽해 보이죠. 치료 효과가 얼마 더 좋아질 것이라는 식의 결과가 나오니까요. 하지만 막상 환자에게 적용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환자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 현장에서 연구 결과대로 작동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마다 배웁니다. 정말 환자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환자를 보지 않고 연구 결과에만 매달린 건 아닌지를요.”
가톨릭계 병원, 일반 병원과 달라야
그는 “가톨릭계 병원은 일반 병원과 달라야 한다”면서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윤리 자문을 통해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가톨릭계 병원에선 호스피스ㆍ연명의료와 관련된 의료 결정을 할 땐 안락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피츠제럴드 신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톨릭교회가, 더 넓게 말하면 종교가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는 수없이 받은 질문이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명쾌한 일침을 놓았다.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과학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어리석은 질문이지요. 확실한 건 종교는 단 한 번도 과학에 방해된 적이 없습니다. 과학과 윤리, 신학은 각각의 고유한 학문입니다. 모두 다 큰 그림의 일부죠.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할 때 문학도 있고, 예술도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시면 아실 겁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