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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묵주이야기] 95. 매일 묵주기도는 우리 가족의 중심

노중호 신부(수원교구 서부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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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가장 감사드리는 것 중에 하나는 가족입니다. 태어나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하느님을 알게 해주신 가족입니다. 제 고향 안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안식을 누리시는 미리내성지가 가까워 아버지께서는 형과 저를 오토바이에 태워 성지순례를 자주 다니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성지 성물방에 들어가시더니 아들 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묵주를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초등학생 때 그렇게 큰 묵주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묵주를 사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밤부터 안방에 온 가족이 모여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늘 화목했지만, 농사를 워낙 많이 지었기에 그 고단함에 가족의 불화가 일어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께서는 온 가족을 안방으로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말과 마음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우셨던 할아버지의 가족 소통의 마무리는 큰 묵주 앞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는 것이었습니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면서 한알 한알 한 단 한 단 가족 모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다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 불화가 일어났나 싶게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회갑을 얼마 지나지 않아 간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할아버지께서는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가톨릭 성가 271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계시는 성모 마리아여 묵주의 기도 드릴 때에~’로 시작하는 성가로 묵주기도를 정성껏 봉헌하시고, 성가 50번 ‘주님은 나의 목자’로 마침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복수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하면 신기할 정도로 평안해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가족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큰 손주가 사제가 되도록 기도하신다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지금에서 보니 그 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저희 형제 사제의 유년 시절은 할아버지의 지혜로움과 우직한 어머니의 신심이 크게 자리한 것 같습니다. 정말 싫고 도망가고 싶었고 우리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옛날 집 마루에서 어머니는 형과 저와 함께 묵주기도를 저녁기도로 하시며, 5단을 마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 않으셨습니다. 꾸벅꾸벅 왜 이렇게 졸리고 하기 싫은지, 너무 자연스레 기도를 빼먹는 지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건강하게 자란 저이지만, 가끔 아프게 되면 너무 심하게 아팠습니다. 어느 겨울,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려 밥도 못 먹고, 열이 펄펄 나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밤새 주무시지도 못하고 이마에 수건을 계속 얹어주시며 옆에서 묵주기도를 하셨던 소리는 저의 치료약과 같았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때 교우들에게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성모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에서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 나라를 잘 전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나자렛 성가정의 힘이 밑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신앙의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아직도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어리고 또 넘어지고 아파하지만, 어머니께서 계심을, 그리고 든든한 가족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가족의 한가운데에, 그리고 제 마음의 중심에 다른 것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온전히 자리하시길 겸손되이 전구를 청하며 오늘도 묵주를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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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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