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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젊은이들의 평화를 빕니다

황진선 대건 안드레아(논객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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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1일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젊은이의 평화’다. 다른 대목은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존엄 같은 기본 인권의 존중을 비롯해 테러와 전쟁의 폭력과 상흔에 대한 성찰 등을 당부하는 조금 익숙한 내용이다.

교황은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한다’는 제목의 이 담화에서 “좋은 정치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신뢰와 감사의 유대로 이어준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정치권력이 소수 특권층 개인의 이득을 옹호하는 목적으로만 행사될 때, 미래는 위태로워지고 젊은이들은 불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젊은이들의 재능과 열망을 구체적으로 북돋워 준다면, 젊은이들의 얼굴과 앞날에 평화가 피어날 것입니다.”

교황이 ‘젊은이의 평화’를 당부한 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사회 체제와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산·소득 격차와 불평등이 확대되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젊은이의 사회적 사다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요즘 세대를 구분해 사회적 약자, 곧 가장 가난한 계층을 지목한다면 20~30대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내 집 마련과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열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인데, 대다수 젊은이는 현 체제가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주일 미사 참여율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청년들의 주일 미사 참여율은 교적 대비 5 미만이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이 위기의 진단과 처방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 같지 않다. 이렇게 젊은 층이 외면하면 한국 교회도 20~30년 안에 현재의 유럽 교회처럼 텅텅 비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6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추기경에 오를 당시 80만 명에 불과하던 천주교 신자는 이제 58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요한 동력이 김 추기경이었음을 되새겨야 한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김 추기경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한동안 바티칸에 머물렀던 김 추기경은 한국에 돌아온 뒤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를 강조하며 공의회 정신을 실천했다.

교회는 교황이 담화에서 밝혔듯이 젊은이들이 재능과 열망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가임기 청년들이 아기를 낳고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영원한 행복으로 부르시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복음의 기쁨」 182항) “참다운 신앙은…이 지구를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으며…모든 그리스도인은, 또 사목자들은 더 나은 세계의 건설에 진력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183항)

교회가 정치권에는 물론 신자들을 포함해 사회에 대해 ‘젊은이의 평화’를 위한 복음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떠한 교회 공동체든 가난한 이들이 품위 있게 살고 아무도 배척당하지 않도록 창의적인 노력이나 실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고 안주한다면, 아무리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공동체는 와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20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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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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