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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죽어도 잃으면 안 되는 것

김원철 바오로(보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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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당시 급진적 계몽주의자들에게 교회는 타도해야 할 또 하나의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이었다. 그들은 교회 권위를 광장의 불길 속에 내던졌다. 몰수한 교회 재산으로는 혁명 정부의 텅 빈 곳간을 채웠다. 충성서약을 거부하는 성직자들은 끌고 가서 단두대 앞에 무릎 꿇렸다.

교회와 국가의 갈등은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1905년 정교분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진정됐다. 그때 교회는 국가 통치에 순응하면 빼앗긴 재산을 어느 정도 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성 비오 10세 교황은 “교회의 정신적 자산은 물질적 재산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정신적 자산을 지켜야 하기에 물질적 재산을 내주겠다”고 선언했다.

바티칸은 1982년 이탈리아의 암브로시아노은행 파산 때 심각한 추문에 휩싸였다. 교황청이 그 은행 대주주인 데다 바티칸은행의 돈세탁 연루 의혹까지 불거져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언론들은 교황청이 민간은행 대주주가 된 경위와 일부 고위 성직자의 범법 행위를 파헤치는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러한 추문이 교회 불신을 부채질하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암브로시아노은행이 남긴 빚을 모두 청산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두 사건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선 교회는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교회헌장」 8항) 언제든 죄에 물들 수 있는 나약함이다. 프랑스 교회는 ‘가톨릭의 맏딸’이라는 영광에 취해 왕정, 지주 계급과 가까웠기에 성난 군중으로부터 한통속 취급을 받았다. 교회 지도자들은 민중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그들의 의식 속에서 꿈틀대는 반교권주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 바티칸의 몇몇 고위 성직자는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창세 4,7) 자신을 노리는 죄악을 경계하지 못해 거룩한 교회 얼굴에 생채기를 냈다. 천사 같은 얼굴로 다가온 악마들은 방심한 틈을 이용해 안으로 불신과 조롱의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두 사건은 더 중요한 점을 가르쳐준다. 교회가 돈과 재산을 잃어도, 심지어 모욕을 당해도 ‘정신적 자산’만큼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교황은 결정적 순간에 손에서 놓아도 되는 것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잃으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정신적 자산이란 교회의 핵심, 즉 복음 정신이다.        

한국 교회의 여러 교구장 주교들이 새해 사목교서에서 쇄신의 당위성을 언급했다. 쇄신과 개혁은 고단한 작업이다. 관리 운영이 버거울 정도로 비대해진 조직을 정비하거나 재정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에는 진통이 따른다. 살아온 대로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저항도 넘어서야 한다.

포도 농사꾼은 이른 봄이면 제멋대로 자란 가지, 필요 이상으로 굵은 가지, 다른 가지와 엉켜 여름에 그늘을 드리울 가지를 쳐낸다. 그렇게 해야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무 골격도 반듯하게 잡혀간다. 쇄신 작업은 포도나무의 가지치기와 다르지 않다.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데 언제까지 ‘쇄신 타령’을 할 작정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게다. 그 답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교황청 관료들에게 행한 연설 속에 있다. “많은 분이 (교황청 개혁은) 언제 끝나는지 묻습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자 보루’(「사목헌장」 76항)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교회가 그런 존재로 서 있기를 바란다. 어느 해보다 더 부지런히 제 몸을 닦는 2019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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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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