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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죄는 ‘죄’라고 말해야

이창훈 알폰소(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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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269조와 270조의 낙태죄 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판결이 빠르면 설 명절 이후에,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낙태죄 폐지 및 낙태 허용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생명운동가들은 낙태죄 존치를 거듭 주장한다.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다. 태아는 엄연히 여성의 몸에 속하며, 여성은 자기 몸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여성의 아픔과 고통이다. 미혼모로서 주위의 달갑잖은 눈총을 받아야 하는 문제뿐 아니라 자녀 양육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심리적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기본적으로 자기 신체를 잘 가꾸고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한 권리이지 자기 신체를 마음대로 훼손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태아는 인간 생명이다. 그것도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이다. 태아의 생명권을 훼손하면서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태아가 인간 생명이 아니라 몸에 생겨난 원치 않는 혹 정도로 여긴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엄마나 혹은 부모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생기는 경제적 심리적 정신적 부담을 덜기 위해 태아를 없앤다는 것은 한 인간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다른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낙태죄 폐지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가톨릭교회와 생명운동가들에 대한 비난도 만만찮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당사자의 고통이나 아픔은 외면한 채 ‘생명은 존엄하며 낙태는 죄’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원론적 입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자비로운 어머니라는 교회가 정작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품어 안으려 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물론 교회가 미혼모를 위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보니 이런 지적과 비난에 대한 공감대가 적지 않게 형성되는 추세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죄’와 ‘죄인’을 구별해야 한다. 낙태가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이라면 그것은 분명 ‘죄’다. 가톨릭교회는 태아를 존엄한 인간 생명이라고 보기에, 낙태를 법적으로 제재받아야 하는 죄로 여기는 것이다. 이 죄를 미워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가 더욱 드리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단죄만이 능사가 아니다. 용서하고 품어 안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요한 8,1-11)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강조는 ‘단죄하지 않는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도 똑같이 강조된다.

죄는 죄라고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죄를 짓지 않게 하고 덜 짓게 할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와 사회가 함께 협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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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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