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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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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침묵] 쇄신, 가난의 선물

김소일 세바스티아노(보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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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전 세계 불자들에게 보내는 경축 메시지를 발표한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으로 축원과 인사를 건넨다. 불교 조계종도 성탄절을 앞두고 조계사 일주문 앞에 성탄 트리의 불을 밝힌다. 이웃 종교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가톨릭이 처음부터 이처럼 유연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1965년에 끝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다. 공의회는 다른 종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우리 시대’라는 선언을 채택한다. 이 문헌의 한 대목은 이렇다.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사실 그 이전까지 가톨릭은 심판하는 교회로 보였다. 교리를 수호하고 이단을 파문하는 데 타협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종교의 계율과 교리에도 진리가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문헌은 더 나아가 이렇게 선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에게 권고한다.” 당혹스럽다. 다른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호하고 증진하란다. 얼마나 파격적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현대화, 즉 전면적 개혁과 쇄신의 분수령이었다. 시대적 소명을 새롭게 해석하는 16개 문헌을 채택했다. 그로부터 가톨릭교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진리를 독점한 도도한 교회에서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열린 교회로 바뀌었다. 단죄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허물과 고통을 끌어안고 함께 아파하는 교회가 되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이 공의회를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교회 쇄신이 거저 다가오진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기까지 교회는 진통을 앓았다. 그보다 100년 전인 1869년에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다. 사상적 대립과 혼란이 극심한 시기였다. 회의 도중 이탈리아군이 교황령을 점령했다. 이로써 교황청은 중세 이래 다스려온 넓은 영토를 잃고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교회가 되었다.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은 1929년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의 협약으로 다시 확보한 땅이다. 가톨릭교회의 쇄신은 어쩌면 가난이 가져온 선물일지 모른다. 세속 영토를 모두 잃고 교회의 존립과 본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체험의 산물이었다. 이런 절박함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게 하였고, 교회 안팎에 엄청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한국 불교를 생각한다. 이웃 종교에 대한 발언은 조심스럽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관심을 거두진 못한다. 우리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일찍이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 유신론을 주창했다. 유신은 파괴를 전제로 함이니, 유신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파괴하지 않음을 걱정하라고 했다. 유신은 가톨릭의 쇄신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만해의 주장은 아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같은 대변혁이 아니었을까 싶다. 청정 쇄신은 모든 종교가 끊임없이 걸어야 할 길이다. 가톨릭의 쇄신 또한 결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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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0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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