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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사람들] 김경희 마리아(성악가, 음악치료사)

43년 음악 인생 중 가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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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가 김경희씨는 성악 대신 음악치료사로 활동하며 환자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있다.

“아프고 가난한 분들을 만나니 삶에 대한 기준과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서울의료원 완화의료 병동과 서울 마포구 창업복지관 자활센터 등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악치료사로 위로와 행복을 전하는 김경희(마리아, 54, 서울 연희동본당)씨가 자신이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는 하느님께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을 매일같이 만난다. 환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김씨는 오히려 자신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음악치료사인 김씨는 요즘에는 암 등으로 고통 속에 지내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주는 일을 한다. 젊은 환자들에게는 좋아하는 가요를 불러주고, 어르신들에게는 동요를 들려준다.

“어르신들이 의외로 동요를 좋아하세요. 동요를 들으면 행복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신대요. 제 노래를 듣던 어르신 한 분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좋으냐’고 하셨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사실 김씨는 음악치료사이기 전에는 유명 성악가였다. 11살 때부터 노래하기 시작해 서울예고와 연세대, 이탈리아 유학을 거쳐 성신여대 성악과 강사로 지냈다. 젊은 시절부터 화려한 무대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6년 전 마지막 독주회를 한 뒤로 더는 무대에 서지 않았다. 계기가 있었다.

“신혼 때 양가 도움으로 서울 신촌에서 전통 찻집을 운영했어요. 당시 찻집 한 아르바이트생이 대학 등록금이 없어 쩔쩔매는 걸 봤죠. 나중에 돈 생기면 갚으라며 적금 탄 돈을 줬는데, 그 학생이 나중에 대학교수가 됐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 학생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자신의 도움이 좋은 열매를 맺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김씨는 이제부터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마지막 독주회를 열었다.

이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무엇인지 모색하다가 자신의 재능도 살릴 수 있는 음악치료사의 길을 택했다. 1급 음악치료사가 되고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상담공부도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변했다. 돈이 제일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생명이 소중히 여겨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 우리농운동본부(본부장 조해붕 신부) ‘천주교 농부학교’를 수료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에 말기 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무엇이 가장 후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환자들은 ‘쉬엄쉬엄 하며 살 걸’, ‘악착 같이 돈 버는 데만 집착하지 말 걸’ 하고 대답해요.”

김씨는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확신을 거듭 하게 됐다.

“돈은 많아질수록 요물인 것 같아요. 돈에 유혹되지 않으니 생명이 소중해 보이고,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하느님이 주신 재능으로 아파서 찡그린 이들을 흥겹게 해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모태 신앙인 김씨는 “철들면서 시작한 43년 음악 인생에서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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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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