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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2) 아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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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하라” 데레사 성녀가 말씀하시네

수도회는 전통적으로 교회에 쇄신의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혈관과 같은 존재이다. 서방 교회 수도회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토는 「수도 규칙」을 통해 수도생활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럽의 복음화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10세기 클뤼니수도원과 11세기 카르투시오회 시토회는 은수와 공동 생활을 결합한 독특한 수도 방식으로 생활하며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엄격히 준수했다. 특히 이들 수도회는 교황에게 절대적 순명을 드러내고 가난을 실천하면서 교회 쇄신과 개혁 운동을 선도했다.

12세기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 도시를 중심으로 제도 교회를 거슬러 복음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발도파와 가톨릭 교회를 ‘간음한 어머니’라 비방하면서 환생을 위해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는 카타리파 등 ‘서구 대이교’가 횡행할 때 성 도미니코와 성 프란치스코는 수도회를 설립 정통 교리 수호와 가난의 실천으로 교회 쇄신을 주도했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에 의한 교회 분열이 확산될 때도 스페인에선 성녀 대 데레사(1515~1582)와 성 이냐시오가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와 ‘예수회’를 창설해 교회에 쇄신과 개혁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성녀의 고향이자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설립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 떨어진 해발 1100여m의 분지 위에 자리 잡은 중세 고도 아빌라는 성녀 대 데레사의 고향이자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설립지이다.

높이 12m 길이 2400m나 되는 성벽이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채 도시 아빌라는 지금도 마치 세상과 단절된 봉쇄 수도원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데레사 성녀는 이 성채를 떠나 광활한 벌판에 있는 ‘강생수도원’에서 1567년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을 설립한다. 14세부터 수도원 생활을 해 19세에 가르멜 수녀로 서원한 그는 52세라는 노년에 관습과 명성을 버리고 청빈과 정결 순명의 수도생활 원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맨발’이 됐다. 맨발은 ‘가난과 고행’뿐 아니라 ‘수덕을 위한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했다. ▲

성녀 그림 가 수도회 개혁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이었다. 성녀는 기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이듯 교회를 그리스도와 세상의 중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도 안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며 하느님과의 인격적 대화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고백한 성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교회를 봉헌했다. 이 봉헌이 개혁의 출발점이었고 기도 안에서 직접 뵌 하느님 때문에 대 데레사 성녀는 동료 수녀 55명이 파문을 당하는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수도원 개혁과 교회 쇄신을 단행할 수 있었다.

▲ ▲ ▲ ◀대 데레사 성녀의 오른팔 뼈.

완덕에 이르는 일곱 단계

성녀가 생활했던 ‘강생수도원’은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바로 옆에 오늘날 가르멜 수녀원이 있다. 수도원 정원에는 완덕에 이르는 일곱 단계 여정인 ‘7궁방’이 십자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다. 돌로 쌓은 수도원 건물 내부는 16세기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을린 벽난로와 찌그러진 주방용품 손때 묻은 기도서와 악보 빛바랜 낡은 제의들이 전시돼 있다. 그중 가장 소중한 유품은 성녀가 가장 아끼시던 ‘기둥에 묶여 매 맞으시는 예수상’이다. 성녀는 이 성상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얼굴을 뵈며 대화를 하는 완덕의 단계까지 갖고 「영혼의 성」 「천주 자비의 글」 「완덕의 길」과 같은 위대한 영성 서적을 저술했다. 항상 ‘교회의 딸’임을 잊지 않은 성녀는 강생수도원을 중심으로 선종 때까지 스페인 카스티야 지역에 17개의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을 세운다.

데레사 성녀의 선별의 영성과 쇄신

성녀의 생가에서 만난 가르멜회 다니엘 데 파블로 마로토(아빌라 신비대학 대학원 교수) 신부는 “데레사 성녀처럼 오늘날 우리도 ‘선별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맨발은 세속에서 필요한 많은 욕구를 떨쳐내는 단절의 뜻합니다. 데레사 성녀가 세속적 삶과 단절한 것은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로 하는 많은 것에서 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해 그 외 다른 것과 일정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쇄신의 출발이며 우리에게서 정말 필요한 하느님을 찾는 첫걸음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1582년 스페인 중북부 부르고스에 마지막 수도원을 만든 뒤 아빌라로 돌아가는 길에 ‘알바 데 토로메스’에서 선종했다. 그의 무덤에는 많은 순례자가 찾아왔고 꽃향기가 나 몇 년 후 살라망카대학 교수들이 이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무덤을 열자 시신은 썩지 않고 생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당시 성녀의 심장과 오른팔 뼈를 끄집어내 별도 보관했는데 지금도 무덤이 있는 알바 데 토로메스 수녀원에 전시되고 있다.

글 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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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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