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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리빙]“사라져 가는 옛 골목 밝히는 빛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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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제민천 문화거리 ‘루치아의 뜰’ 운영하는 박인규·석미경씨 부부

▲ 부부는 루치아의 뜰이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안락한 선교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7 부부는 루치아의 뜰이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안락한 선교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쓸쓸해진 충남 공주의 구도심. 제민천이 흐르는 골목 어귀에 미소가 닮은 부부가 산다.

앞마당에 낮게 핀 꽃들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옛 한옥. 부부는 한옥으로 들어가는 낡은 대문에 ‘루치아의 뜰’이라는 명패를 매달았다.

바람과 빛이 주인처럼 드나드는 한옥에서 아내는 차를 우려내고 남편은 초콜릿을 만든다. 둘 사이의 동업자는 하느님이다.

▲ 빛과 바람이 주인처럼 드나드는 루치아의 뜰 내부.

▲ 나태주 시인의 ‘루치아의 뜰’.

루치아의 뜰에서 차를 마셔본 손님들이 하나같이 방명록에 적어놓고 가는 말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곳.” 이곳의 단골 나태주 시인은 ‘루치아의 뜰’이라는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 너무 알까 겁난다”라고 썼다.

루치아의 뜰은 박인규(십자가의 성요한 56 대전교구 공주 신관동본당)씨가 오랜 세월 차 공부를 해온 아내 석미경(루치아 53)씨에게 놀이터 삼아 만들어준 차 문화 공간이다.

2년 전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석미경씨는 이 한옥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방 두 칸과 부엌 한 칸 다락방이 있는 조그마한 집이었다. 녹이 슨 철문은 건들거렸고 마당에는 살림살이와 깨진 장독대 조각들이 나뒹굴었다. 낡은 벽장에는 성모상과 성물들이 있었다.

“이제 세종시로 다 떠나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많았던 때인데…. 저희는 재테크 논리로 산 게 아닌데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부부는 한옥 사진을 들고 건축가들을 찾아다녔다. 수소문 끝에 “세월의 흔적이 가장 귀한 인테리어”라는 철학을 가진 임형남ㆍ노은주 부부 건축가를 만나 한옥은 다시 태어났다. 50년 전 지어진 이 한옥은 세례명이 스텔라였던 할머니가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집이었다.

한옥의 구조는 살리되 창을 더 내어 빛을 더 들어오게 하고 부엌과 방 사이의 벽장을 뚫어 창을 놨다. 깨진 항아리에는 꽃을 심었다. 어두웠던 다락의 천장은 뜯어냈다.

2달 간의 공사 끝에 루치아의 뜰이 문을 열었고 인적 없고 어두운 골목에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뜰을 청소하다가 골목까지 매일 청소하게 된 부부의 도시에 대한 사랑은 골목을 지나 마을로 커졌고 문화유산의 도시인 공주를 향한 애정으로 번졌다.

루치아의 뜰이 생긴 골목은 ‘루치아 골목’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부부는 정과 낭만 추억이 서린 옛 골목을 보존하기 위해 지역 문화예술인 20명과 함께 골목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아내 석씨가 골목길 재생 협의회 회장이다. 협의회 회원들은 사람들이 떠난 골목에 벽화도 그렸다. 공주시가 제민천 재정비에 나서면서 목공예 공방과 문학관 등이 생겨났고 루치아 골목은 문화골목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공주에는 신도시가 갖지 못하는 고도의 정취와 품격이 살아있습니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생명력이 넘치려면 그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죠.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 서로 사랑하며 살면 좋겠어요.”(아내)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올해 2월 말 퇴직하고 앞치마를 둘렀다. 그는 루치아의 뜰 뒷집에 초콜릿 공방을 만들어 초콜릿 만드는 재미에 산다.

▲ 옛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루치아의 뜰. 곳곳에 작고 귀한 아름다운 것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옛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루치아의 뜰. 곳곳에 작고 귀한 아름다운 것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루치아의 뜰에는 작고 귀한 우리의 옛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곳에 다녀간 손님들은 꽃이나 CD처럼 혼자만 보기에 아까운 귀한 물건들을 선물로 보내온다.

아내 석씨는 “우리 전통의 차 문화를 공부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며 “사라져 가는 옛 골목을 밝히는 빛이 되고 싶다”고 했다.

▲ 루치아의 뜰 입구. 아내 석미경씨가 부엌에서 차를 우려내고 있다.

남편은 “주말에는 손님이 많아 녹초가 되곤 하지만 손님이 맛있게 드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차와 초콜릿을 내드린다”며 “좋은 분들이 오셔서 이곳에서 치유돼서 간다는 말을 들으면 기쁘다”고 털어놨다. 부부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안락한 선교의 장이 되면 더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엌에는 아내의 손 글씨로 적어 내려간 기도문이 걸려있다.

“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거리를 주셨으니 감사드리나이다. 오늘 저희의 기도와 노동이 서로에게 평화와 기쁨의 선물이 되게 하시며 수고와 정성마다 풍성한 결실을 주옵소서.”

루치아의 뜰 : 041-855-2233(화요일 휴무)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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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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