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홈 서울대교구 | 가톨릭정보 | 뉴스 | 메일 | 갤러리 | 자료실 | 게시판 | 클럽 | UCC | MY | 로그인
뉴스HOME  교구/주교회의  본당  교황청/해외교회  기관/단체  사람과사회  기획특집  사목/복음/말씀  생명/생활/문화  사진/그림
2017년 7월 28일
전체보기
교황 방한 특집
월간-주간
우리교구,대리구
특집기획
교회음악/미술/순교자/성지 산책
인터뷰/취재
신문창간기념특집
생명존중/문화
성경주해
공모전/시상
▶◀선종 특집
영성의길,수도의길
사랑/청소년
가톨릭교회교리서 해설
선교사들-중국현대박해기
*지난연재
하느님의 종 124위
 
전체뉴스
 
교구종합
본당
교황청/세계
기관/단체
사람과사회
기획특집
사목/복음/말씀
생활/문화
사진/그림
 
상세검색
 
뉴스홈 > 기획특집 > 특집기획    


[평양의 순교자들] ③ 강영걸(바오로) 신부

교회에 자립 정신 심고 고난 속 공동체 격려

교회에 자립 정신 심고 고난 속 공동체 격려

▲ 대신학생 시절 양기섭(왼쪽), 홍용호(가운데) 신학생과 함께한 강영걸 신학생.



'순명(Oboedientia)의 사제'.
 
평양지목구의 두번째 한국인 사제인 강영걸(바오로) 신부를 특징짓는 표현이다.

그만큼 그는 하느님께 자신의 의지를 봉헌하고, 자신을 제물로 바쳤으며, 인류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에 확실히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순명은 맹목적,
기계적 순명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순명이었으며, 신앙과 사랑을 토대로
한 순명이었다.

강영걸 신부는 1904년 평안남도 평원군 노지면 추흥리(현
문흥리)에서 태어났다.


▲ 메리놀외방선교회원들과 피정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는 강영걸(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신부.


 

그러나 강 신부의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훗날 서울대목구장에
임명되는 노기남 대주교나 서울대목구 윤형중 신부, 평양지목구 첫 사제 양기섭 신부와
대신학교 동창이었다는 단편적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다녔고, 졸업 뒤 1931년 5월 30일 서울대목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뮈텔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본래는 서울대목구 소속이었지만, 1927년 평양지목구가 설정돼
메리놀외방선교회가 평안남ㆍ북도 선교지를 맡게 되면서 평양지목구 사제로 사제품을
받았다.
 

강 신부는 성품이 무척 강인했던 사제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주교의
명이라면 절대적으로 순명했고,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완수해냈으며,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잘 유지했던 사제이기도 했다. 후배인 홍용호 신부가 평양대목구장 서리
직무대행에 이어 주교로 임명되자 강 신부의 동창인 양기섭 신부는 서울대목구로
소속을 옮겼지만, 강 신부는 끝까지 홍 주교에게 순명하면서 남모르게 홍 주교를
지원하고 협력했다.
 

수품 뒤 서포지목구청에 주재하던 강 신부는 메리놀회가 일본 교토지목구 포교지를
맡게 되면서 메리놀회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5년간 선교사들을 돕는다.
 

교무금 곡식으로 내도록 해 자립심 강화

이어 1937년 7월 귀국, 중화본당 주임으로 첫 발령을 받는다. 사제로서 '첫 본당
사목구 주임'이라는 자리가 주는 각별한 느낌만큼이나 중화본당에 그는 사랑을 쏟았다.
더욱이 의사소통이 어려운 메리놀회 사제가 아니라 한국인 사제였기에
본당 공동체
분위기 또한 활기를 띠었다. 강 신부는 우선 농촌 본당이라는 점을 참작해 교무금을
봄, 가을로 거둔 곡식으로 내도록 함으로써 교회에 자립 정신을 심었다. 부임 1년
만인 1936년 8월 가난한 아동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성심학원을 개원했으며, 다음
달 유치원을 개원(건물은 이듬해 신축)하는 등 문맹 퇴치에 앞장섰고, 청년회 활동에도
역점을 둬 80여 명의 회원을 중심으로 전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울러 1937년
김리신 회장이 대지와 건축 자재를 희사하자 평남 중화군 신흥면 삼응리(현 평양시
강남군 고천리) 공소에 99㎡(30여 평) 규모 의 강당을 신축했다.
 

1939년 1월 재일교포 사목을 위해 다시 일본에 건너간 강 신부는 1942년 귀국,
이듬해 4월까지 의주본당 주임을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의 총동원령으로
착취가 가혹했지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을 잘 무마해 의주본당을 보호했다. 일제의
무기헌납 요구로 모든 교회가 수난을 겪을 때도 의주본당만은 강 신부의 노력과 높게
지은 종각 덕분에 1919년 성당 신축 당시 정 마리아가 헌납했던 종을 지켜낼 수 있었다.

 

1943년 6월에는 일본인들이 개간한 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민들이 대부분인
운향시본당에 부임, 11개월간 사목하며 농민들이 용기와 인내심을 갖도록 돌보며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했다. 이어 1944년 4월부터 8개월간 정주본당에서 사목한 뒤
그해 11월 마산본당에 전임됐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였고 일제의 학정과
침탈, 생필품 부족이 만연한 상태여서 교회 운영 또한 큰 지장을 받았으나 강 신부는
본당 공동체가 내적으로 충실하도록 힘을 쏟았다.


 

공산당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도

8ㆍ15 해방 후는 기쁨과 함께 공산당의 박해가 찾아온 수난의 시기였다. 교구
사제가 부족했기에 마산본당에 강서본당 주임까지 겸직한 강 신부는 신자들이 무신론자들의
감언이설에 흔들리지 않도록 신자들의 지도에 애를 써야 했다.
 

1949년 5월 북한의 모든 성직자가 수난기에 들어가면서 강 신부에게도 어려움이
미쳤다. 마산본당이 자리 잡고 있던 강서군 성태면(현 평남 증산군) 인민위원회에서
성모학원 건물을 양도하라고 요구했으나 강 신부가 이를 거절하자 공산주의자들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성당을 드나들며 괴롭히고 감시했다. 사제와 신자들의 접촉도
자유롭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위협을 받았다.
 

1950년 6월 24일 아침, 마산본당 밭에서 일하던 강 신부는 성태면 인민위원회로
연행됐다가 강서군 인민위원회를 거쳐 평양 인민교화소에 투옥됐으며, 1950년 9월
23일께 유엔군의 북진으로 다급해진 공산군에 의해 같은 감방에 갇혀 있던 8명과
함께 총살형에 처해졌다. 당시 강 신부의 나이는 47세였다.
 

강 신부의 순교 사실은 1ㆍ4 후퇴 때 월남한 현용국(비오) 마산본당 회장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전쟁 당시 강 신부와 같은 감방에 갇혀 있다가 총살형을 받았지만,
유엔군에 발견돼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인물이 거제포로수용소에 포로로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 회장이 직접 찾아가 들은 내용을 20여 년이 지나 1979년 5월 7일에
채록한 것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강영걸 신부는

△1904년 평남 평원군 노지면 추흥리 출생

△1931년 5월 30일 사제 수품

△1950년 6월 24일 마산본당 인근 밭에서 일하다가 성태면 인민위원회로 연행

△1950년 9월 23일께 평양인민교화소 수감 중 총살형

△소임 : 서포 평양지목구청 주재, 메리놀회 일본 선교 지원, 중화본당 주임,
일본 교포사목, 의주ㆍ정주ㆍ마산(강서 주임 겸임) 본당 주임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17.04.21 등록]
가톨릭인터넷 Goodnews에 오신 모든 분들께 축복이 함께 하시길..
오늘의 복음말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성인
 나자리오(Nazarius)
 베드로 포베다 카스트로베르데(Peter Poveda Castroverde)
 보트비드(Botvid)
 빅토르 1세(Victor I)
 삼손(Samson)
 아카치오(Acacius)
복자  안토니오 델라 치에사(Anthony della Chiesa)
 에우스타시오(Eustathius)
복자  요한 소레트(John Soreth)
 인노첸시오 1세(Innocent I)
 첼소(Celsus)
 페레그리노(Peregrine)
최근 등록된 뉴스
불을 밝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길 바라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하. ...
“교회 내 외로운 노인 돌봄 확산하길...
[생명을 살립시다] 나프로 임신법-상...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24...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2) 최창...
[사도직 현장에서] 고해소의 여인
하늘 나라 향하는 마음의 눈
[아! 어쩌나] 401. 사이코패스(...
[새책] 「도마 안중근」
[새책] 「프랑스 학파 영성과 마리아...
중고딩! 힘내~ 「역시! 너는 괜찮아...
여름방학, 신앙 향기 가득한 미술관으...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이집트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많이 조회한 뉴스
축구장을 누비던 맨유 선수, 사제가 ...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된 우준날리 신부...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폐원미사 ...
염 추기경, 도종환 신임 문체부 장관...
“집에서도 하늘나라 소풍 갈 수 있어...
[나의 미사 이야기] (8)입으로 기...
[나의 미사이야기] (9) 미사 중에...
휴가 중 부득이하게...주일 미사 참...
한국엔 갑질하는 창업주, 미국엔 가치...
우리농 급식, 아이도 농가도 웃는다
[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 상. ...
금요일에 고기를 먹어도 되나요?
초복맞이, 어려운 이웃에게 선풍기와 ...
[현장 돋보기] “우리는 주의 발자취...
최저임금·근로계약서… 주일학교에서 ...
청소년국 사목국
성소국 사회복지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가톨릭출판사
교회사연구소 노인대학연합회
가톨릭학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화요일 아침

 가톨릭정보 가톨릭사전  가톨릭성인  한국의성지와사적지  성경  교회법  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뉴스  예비신자인터넷교리
  서울대교구성지순례길  한국의각교구  한국천주교주소록  경향잡지  사목  교구별성당/본당  각교구주보  평양교구
  교황프란치스코  故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  정진석니콜라오추기경 염수정안드레아대주교
 가톨릭문화 Gallery1898  가톨릭성가  전례/교회음악  악보/감상실  가톨릭UCC 
 가톨릭신앙
      & 전례
7성사  매일미사  성무일도  가톨릭기도서  전례와축일  신앙상담  교회와사회  청소년가톨릭  청년가톨릭  캠프피정정보
바오로해  신앙의해 
  나눔자리 클럽  게시판  자료실  구인구직  설문조사  홍보게시판  이벤트  도움방  마이굿뉴스  청소년인터넷안전망 
  서울대교구본당게시판/자료실
서울대교구청 전화번호 |  서비스약관 |  개인정보 보호정책 |  도움방 |  전체보기 |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  홈페이지 등록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전화번호보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