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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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주워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운데 쪽방촌 어떻게 벗어나나..."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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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모은 폐지와 깡통이 저울에 오른다. 노동의 가치가 ㎏으로 환산되고 천 원짜리 몇 장이 노인에게 주어진다. 빈곤한 노동의 결과는 주거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손에 쥔 돈으로는 쪽방에서 살기조차 벅차다.

노동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인간의 존엄을 표현하고 증진하는 수단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가정을 이뤄 유지하고 재산권을 갖기 위해, 더 나아가 인류 공동선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새로운 사태」 128항, 「노동하는 인간」 10항 참조) 하지만 노동에 가치를 더하는 일은 가난한 이들 스스로 할 수 없다. 쪽방 거주민과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일상은 한 뼘도 나아지지 않은 채 빈곤의 굴레를 맴돌고 있다.

▲ 수입이 없는 노인들은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내다판다.

 

쪽방촌만 맴도는 이들

낡은 가방을 메고 쪽방 거리를 거닐던 윤성진(가명, 64)씨는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청파동으로 이주했다. 그는 쪽방에서 쪽방으로 옮겨가며 살아온 지 수십 년째다. 윤씨는 당장 다음 달이 걱정이다. 한 달 단위로 내는 월세를 내지 못하면, 지하철 역사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당장 이번 달 쪽방 월세를 내지 못하면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데 일거리도 없다”고 말했다.

윤씨처럼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은 최소 37만 가구(국토교통부,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 조사’, 2017~2018)다. 비주택으로 분류된 쪽방이나 고시원, 숙박업소(모텔),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다. 숙박업소를 개조해 만든 쪽방에는 50대 이상이 69.7나 거주하고,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는 60세 이상이 71.2나 거주한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6년 기준 46.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볼 때 주거 문제와 노인 빈곤 문제는 밀착돼 있다.

쪽방에 한번 들어온 이들은 쪽방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목돈을 모을 수 없다.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 이들은 한 달에 50만 1600원(1인 가구 기준)을 받는다. 장애 여부에 따라 지원금이 추가되지만, 평균 15~27만 원인 쪽방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이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취약계층 지원 사업’은 이들에겐 먼 이야기다. 주거취약계층 대다수는 보증금 자체를 마련하지 못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가톨릭평화의집 김남훈(대건 안드레아) 소장은 “대부분의 쪽방 주민들은 노동하고 싶어하는데, 수급비가 끊겨 제대로 된 노동을 할 수 없다”며 “이들은 위한 주거 대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아픔을 보듬는 등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일한 일자리는 ‘폐지 줍기’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니 열악한 노동, 폐지 줍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골목길에서 만난 박기훈(가명, 58)씨도 골목길에 앉아 전선을 뜯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는 시설에서 도망치기를 반복하다가 동자동 쪽방촌에 정착했다. 그는 소일거리를 하며 버틴다. 밤낮으로 손수레를 끌고 주워온 폐지와 전선을 뜯는다. 박씨는 “전선을 뜯어서 고물상에 내다 팔거나, 폐지 주운 걸로 하루를 연장한다”고 말했다.

건강, 장애를 이유로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소일거리는 폐지를 줍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80만 명의 노인이 폐지를 줍는다. 손수레나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싣고 도로를 건너다 후진하는 차에 치이거나, 폐지를 줍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넌다. 소일거리라고 하기에는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다.

쪽방촌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일하고, 대가를 받는 순간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다. 이들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는 이유다.

쪽방촌 주민 박기훈(가명)씨는 “수급자들에게 정작 일을 할 기회는 없다”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 쪽방들은 여인숙이나 주택을 쪼개어 만들었다.

‘땅은 하느님의 것’

삶의 터전은 생계를 잇는 중요한 문제다.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땅은 주님의 것이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신명 10,14 참조)이라고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소유에 대한 인간의 청구를 모두 거절하십니다.(67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68항)

빈곤한 노동의 결과는 주거의 빈곤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안식일의 율법을 거론하며, 하느님이 자연에 새겨 놓은 순환의 재발견과 존중을 강조한다.

“율법의 전개는 인간이 다른 이들과 맺은 관계와 그들이 살고 일하는 땅과 맺은 관계에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땅의 결실을 포함하여 땅이 주는 것은 모든 이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71항)

성경은 땅에서 수확할 때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 구석까지 모조리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고 남은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너희 포도를 남김없이 따 들여서는 안 되고,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서도 안 된다. 그것들을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하여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 19,9-10)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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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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