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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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아 부모·형제에 희망 전하며 ‘행복한 삶터’ 설계

이런 가정 어때요 / 도시공학자 정석 교수·고유경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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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에 개통한 우이신설선의 ‘달리는 미술관’에 팝 아티스트 정도운씨의 그림이 선정돼 열차 내부에 작업을 랩핑했다. 그의 가족들이 작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큰 아들 정한결(프란치스코), 정석 교수, 막내딸 정채운(안젤라), 고유경씨, 둘째 아들 정도운(엘리야), 셋째 아들 정새온(야고보), 정 교수의 어머니 허옥순(클라라), 아버지 정주복(아우구스티노)씨. 고유경씨 제공


“도시를 생명에 비유하면 도시의 길은 핏줄입니다. 핏줄에는 피와 기운이 막히지 않고 흘러야지요. 폐쇄된 건물이 들어서면 지하로 들어가거나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길에 늘 사람이 안전하게 오가면 ‘생명력 있는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도시공학자 정석 교수)
 

길이 도시의 핏줄이라면 부부는 가정의 혈관이다.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지배하면 시민들이 불행하듯, 가정에서 부부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불안하다. 행복한 도시를 위해 도시의 맥을 짚는 도시공학자 정석(예로니모, 58, 서울대교구 세곡동본당) 서울시립대 교수와 4남매 엄마로 대담하게 살아온 아내 고유경(헬레나, 56)씨를 만났다.
 

“이렇게 쉬어 꼬부라진 김치를 먹으라는 거야?”

“지금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해준 우리 엄마를 욕하는 거야?”

“컵은 왜 여기다 갖다 놨어?”

“그걸 왜 물어봐? 당신이 치우면 되지.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현실은 찌질하고 쪼잔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마음이 엉켰다. 마음으로 ‘참자, 접자!’ 하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욱하고 폭발했다. 아이들 넷을 키우면서 일상은 아이들에게 쏠렸고, 사랑의 약속은 잊혀 갔다.
 

부부에게 찾아온 첫 아이 한결(프란치스코)이는 내반족으로 발이 안쪽으로 굽어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깁스를 하고, 어린 나이에 두 차례 수술실을 들락거렸다. 3년 후 태어난 둘째 도운(엘리야)이는 발달장애아였다. 주일학교 교사 출신인 부부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엄마는 조금 달랐다. “억울함, 원망을 미뤄놓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열심히 치료받아 세상에 내보내자고 결심했어요. 노력하면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셋째 아들(새온, 야고보)을 데리고 도운이의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고씨는 넷째를 임신한 것을 알고 수렁에 빠졌다. “도운이가 6살이었는데, 발달 속도를 보니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정상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처음 신앙이 삶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세속적으로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부부는 넷째도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고씨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아이들이 아닐까, 혹은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받는다 안 받는다 선택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하느님이 어련히 알아서 키워주시겠지, 감사히 키우자’고 결심하니 구렁텅이 같은 마음이 없어졌어요.”

2001년 막내딸 채운이(안젤라)가 태어났고, 고씨는 발달장애인 부모 자조모임 ‘기쁨터’를 만나게 됐다. 절박한 마음에 100일 된 갓난아기를 품고 모임에 찾아갔다. 같은 고통을 먼저 겪은 선배 엄마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깨우쳤다. 장애가 있건 없던 아이는 충분히 자고, 즐겁게 놀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치료로 내모는 일을 멈췄다. 도운이의 장애를 비정상이나 결핍이 아닌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를 영재로 키우고 싶은 욕망이 많았어요. 만 두 돌이 지나면 선생님을 불러다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넷을 키우면서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그러다 부부는 2006년 본당 주임 신부로부터 ME 주말을 권유받았다. 당시 일산 주엽동본당 주임이었던 노연호 신부는 아이들은 사제관에 맡기고 다녀오라고 권했다. 본당 신자들이 유치원생부터 중학교 2학년인 네 아이를 돌봐줬다.
 

“둘 만의 시간은 결혼한 지 15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서로는 보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었죠. 그동안 싸움이 될까 덮어놨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상대방을 내 뜻대로 바꾸지 않아도 차이를 존중하며 같이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정석 교수)

둘 사이의 사랑을 튼튼히 다진 부부는 2007년 특별한 캠프를 기획했다. 장애아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를 위한 캠프였다. 주일학교 교사의 경험을 살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한 형, 누나, 동생에게서 벗어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였다. 도운이의 형제자매들은 수가 많아 서로 사랑의 완충지대가 되어줬다.
 

“장애아를 둔 형제, 자매 중에서 심리치료를 받지 않은 아이가 없어요. 장애아를 둔 부모는 아픈 아이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쏟지만, 장애가 없는 자녀에게는 기대만 하거든요. 부모들은 우리가 죽으면 이 아이들에게 아픈 아이를 책임져달라는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고유경씨)  
 

두 사람이 혼인 때 했던 약속이 있다.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지 말고, 세상과 이웃을 향해 열려 있자는 것’이었다.

올해 혼인한 지 28년 차 되는 부부는 이 약속을 품고, 10년 넘게 ME 부부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 교수가 도시공학자로 도시 설계를 통해 시민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꿈이 있다면, 부부로서 많은 후배 부부들이 행복해지기를 꿈꾼다.

정 교수는 “행복한 도시로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 다수의 힘이 필요하듯,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도 고립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부부의 삶이든, 자녀를 키우는 삶이든 끊임없이 가야 할 길을 탐구하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 고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맞아요, 제가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을 찾아가 만났듯 고립됐을 때는 죽을 것 같지만 함께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고씨는 올 4월, 아들 도운씨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팝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도운씨가 LA에서 그룹전에 참가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도운씨는 특히 가족을 즐겨 그린다. 지금까지 5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10여 차례 그룹전에 함께했다. 그에게 예술 활동은 장애를 극복한 결과가 아니다. 그의 있는 그대로의 삶이다. 이 삶이 가능했던 건 존재 그 자체를 품어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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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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