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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11. 엄마는 생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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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눈을 말똥말똥 뜨고선 칭얼거리기를 반복하던 평화는 늦은 오후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온종일 평화 곁에 딱 붙어서 평화를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금세 잠이 쏟아지다가도, ‘하느님은 어쩜 이리도 예쁜 아기를 만들어 주셨을까’ 싶다.

세상에 소중한 건 다 공짜다. 남편이 선물처럼 내게 주어졌듯이 평화도 우리에게 선물처럼 뚝 떨어졌으니. 평화의 일용할 양식인 모유 역시 공짜로 샘솟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작고 여린 소중한 생명을 돌보는 일 앞에서 나는 때때로 졸고, 소변으로 축축해진 기저귀를 차고 천장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평화 앞에서 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입술에 젖꼭지를 톡톡 건드려만 주어도 쪽쪽 거리다가 쑤욱 빨아들여 꿀떡꿀떡 삼키는 평화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은 기쁘고 흐뭇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허무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런 게 산후우울증이라는 걸까.

모유 수유로 옷의 앞섶은 항상 젖어 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씻지도 못한 내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평화가 내 가슴에 가득 찬 모유를 비워낼 때마다 나도 텅 비는 느낌이다.

남편은 젖병에 140cc의 모유를 짜내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는 생산직으로 이직했다”고.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웃었지만, 이 생산직은 결코 수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아이와 나와의 싸움이 아닌 내 욕구와의 싸움인 것 같다. 제때 잠을 자지 않고 칭얼대는 아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면, 아기가 짜증을 나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어서겠지.

평화를 품에 안기 전, 임신했을 때만 해도 욕구를 채우는데 자유로웠다.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싶으면 가고, 놀고 싶으면 놀 수 있었다.

조리원에서 산모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산모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원한 바닷가에 가서 수영 좀 하고 싶어요.”

우리는 밥을 먹다 말고, 웃어 버렸다. 출산 직후 잘 걷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시원한 바닷가에서 수영이라니. 3시간마다 젖을 찾는 아기는 어떻게 하고.

인생의 전반전이 사랑을 받는 데 익숙한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후반전에 들어섰다. 하느님이 호루라기로 경기가 끝남을 알리기 전까지 사랑의 필드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뛰고 싶다.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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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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