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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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목계반점 (2)

그때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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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나 부산스러운 아이가 있었다.

이십여년 전이니 핸드폰도 흔하지 않았고 일반전화기에도 발신자 번호가 찍히지 않던 시절에 배달업에 종사하는 직업들은 모두가 그렇듯이 전화 한 번 잘못 받으면 상대편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는 연락할 방법이 없던 때였다. 누구네 집인지 자세히 모르겠거나 음식 주문이 정확하지 않을 때는 난감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는데 그날도 덜렁대던 명천이는 배달통을 들고선 쒼~나게 바람같이 사라졌다. 아주 잽싸기는 뱁새 못지않게 빠른 아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리고 “네! 목계반점입니다” 하곤 한껏 친절한 목소리를 뽑으며 전화를 받으니 다급한 목소리로 “아줌마! 저 명천이인데요? 저 지금 어디 배달 가는 거였지요?” 하는 것이다.

배달을 가다가 어디로 가는지 까먹어서 길옆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전화하는 중이라고 했다. 성질이 나야 하는데 웃음보가 터졌다. 전화기 너머 그 아이도 멋쩍은지 따라 웃는다.

배달도 이거 빼놓고 저거 빼놓고 가서, 두 번씩이나 다시 가기 일쑤였다. 젓가락이 안 왔어요! 짜장 소스가 안 왔어요! 등등 항의 전화는 내 차지가 되고 보니 그 아이 움직임과 일머리를 신경 써야 했다. 여차하고 눈을 돌리는 순간 일을 벌이는 아이였다.

예부터 전해오는 말에 중국집이 망하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주인이 노름을 해서 말아 먹던가 아니면 배달 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안주가 항상 대기 중이고 하루 장사가 끝나면 현금이 있으니 처음엔 음식 팔아 이득을 남기자고 한 것이 끼어 들어 노름을 하게 되고 재미가 들려, 결국 아침까지 하고 나면 장사는 뒷전에 노름방으로 전락하다 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달 업종이니 사고는 다반사인 데다가 큰 인명사고까지 겹치면 합의금에 치료비까지 거금을 물어야 하니 영세업종인 가게는 문 닫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 없이 주방장 곤조에 시달려야 했고 배달 사고도 몇 번을 겪다 보니 수를 내어야겠다는 생각에 어느 날 저녁 남편과 머리를 맞대곤 배달과 주방기술을 익혀 우리 힘으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로 나는 원동기 면허에 도전을 했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선 땅바닥에 S코스를 그리고 굴절 코스를 그려서 연습을 하고 드디어 노은초등학교에 원동기 면허 출장시험공고가 떴길래 운동장으로 향했다.

30여분 거리를 남편이 데려다 주면서 걱정이 앞섰는지 자신 없으면 괜한 짓 말고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말에 은근 오기가 생겨 떨어지더라도 시험은 보겠노라고 당차게 말해놓곤 그곳에 도착하니 경찰감독관에 시험 보러온 동네 할아버지들과 주민들이 이삼십 명은 족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즈음에 오토바이 면허단속이 심해서 긴다난다 잘 타고 다니던 할아버지들도 어쩔 수 없이 면허증 취득열기에 합류해야만 했다. 그런 할아버지들도 막상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출발 신호를 보내자 벌벌 떨다가 출발도 못해 보고 시간 초과로 탈락을 하고 멋지게 출발하는 아저씨들도 굴절에서 앞바퀴는 돌았는데 뒷바퀴가 금에 닿아 아깝게 탈락하는 것을 보니 오금이 저리고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곤 내 차례가 되고 “박애다씨 출발!” 신호에 부르릉 시동을 걸고 진입하는데 생각보다 쉬웠고 합격이라는 신호를 받고 보니 덜덜 떨던 애다는 어디가고 금세 목에 힘이 들어가고 거만하게 걷는 꼴이라니. 부러운 시선을 한껏 받고서 말이다.

그날부터 당당하게 원동기 면허를 손에 쥐고 부르릉거리며 배달 다니기 시작했고 만만해지니 이번엔 장거리 배달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하곤 잉크도 마르지 않은 면허증 초보가 겁도 없이 무조건 배달을 나섰는데 시골의 논둑길 밭둑길을 우습게 봤던 것이 큰 착오였다.

앞으로 직진은 잘 갔는데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온전히 진입한 길이만큼 후진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그 좁은 길을 여차하면 논으로 빠지게 생겼으니 한 바퀴 후진하면 내려서 뒷바퀴 보고 또 한 바퀴 돌아가면 또 내리기를 반복 가게 배달은 밀려있는데 이러고 있으니 등짝은 땀에 젖고, 똥줄은 타고,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차를 머리에 이고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그렇게 나는 처음부터 후진의 혹독한 경험으로 도로에서 달리는 건 자신 없어도 논둑길 후진하기 대회가 있다면 입상할 자신은 있다.

그렇게 남편은 주방장이 되었고 나는 배달원이 되는데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여러 명이 일하던 것을 둘이서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비로서 깨달은 게 있다면 부부가 맘이 맞으면 세상에 못할 것도 못 이겨낼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맘이 맞지 않을 땐 천하에 웬수가 따로 없지 싶다가도 때론 천군만마를 거느린 듯 든든한 게 부부가 아니던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배달 16년차가 되었다. 여유 있게 지나는 꽃도 보고 산들바람 맞으며 운전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달을 가는 도중에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나도 명천이처럼 “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깜빡 몇 초간 멍한 상태에 이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스스로 놀라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내게도 이런 날들이 오다니 그러면서 그때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 너도 지금의 나처럼 그런 심정이었겠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속 타는 부끄러움인지…. 세상 남의 말 할 것이 못 된다더니…. 그러면서 은근 걱정이 앞선다. 벌써부터 치매 증상 오는 건가? 그러면 명천이는 스무 살에 치매가 왔나? 하면서 푸시시 웃는다.

웃음 끝자락에 지나온 시련들이 이젠 추억되어 나의 굳은살로 박혀있다. 그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 시련은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시련 없는 인생이 어디 있던가! 그게 인생인 거지 하면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련을 이겨 낸 사람은 생명의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월계관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야고 1,12)


글 _ 박애다 (애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25년간 중국음식점 '목계반점'을 운영해 오고 있다.
삽화 _ 김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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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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