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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소풍생(談笑風生)

[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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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거울에 비친 제 얼굴 보는 일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미간에 새겨진 주름과 처진 입꼬리는 심술궂어 보입니다. 노화를 이기지 못한 눈(쌍꺼풀)은 두툼한 눈밑 지방과 더불어 가장 보기 흉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둡고 심각해 보이는 표정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얼굴을 책임지라’는 말이 외모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기숙사에서 살았던 20대 시절 저는 동료들로부터 가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모든 사람한테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냐”고요. 신기하다는 듯 던지는 말에 저 역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많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20대 시절 얘깁니다.

옛날엔 그랬습니다. 상대가 던지는 비수 같은 말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습니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똑같이 반사(反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나로 인해 상대방이 받을 상처에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게 없으니 상대를 대하는 표정에도 여유가 있고 미소를 보이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혹 바라는 걸 얻지 못해도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음은 그만큼 내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하니 친절하거나 부드럽지 않고 달리 반응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은 그러질 못합니다. 나의 기대와 다르다고 쉽게 화가 납니다. 사소한 의견 차이도 견디지 못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해를 따지고 상대의 눈빛을 살피느라 머리가 복잡합니다. 도를 넘은 뒷담화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내 얼굴도 변해갔을 겁니다.

‘담소풍생.’(談笑風生)

“미소 띤 대화 속에 생명의 바람이 인다”는 뜻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이 말을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유유자적(悠悠自適)’ 운운하며 마치 도 닦는 것처럼 살아도 얼마나 얕은 내면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정한 눈빛, 해맑은 미소만이라도 죽을 때까지 연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편집국장, 취재부장,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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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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