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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3. 성 안토니오 다블뤼(Marie-Nicolas-Antoine Daveluy)

윤영선 비비안나(강동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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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작 '성 다블뤼 안토니오'

출 생 | 1818년 프랑스 아미앵(Amiens)
순 교 | 1866년(48세) 갈매못 / 군문효수
신 분 | 주교(제5대 조선대목구장)
한국이름 | 안돈이



‘모든 것’ 버린 대신 예수님 가진 성인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성 안토니오 다블뤼의 좌우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언제나 큰 힘이 된다. 북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부유한 명문가에 속했던 그는 어쩌면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겠다며 사제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조선으로 그를 보냈다. 조선 선교사로 살았던 21년은 상상에서조차 그려본 적 없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낯설고 열악한 조선에서 피로와 허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버린 대신 예수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1866년 성 금요일 갈매못에서 순교

성인을 만나러 갈매못성지로 향했다. 갈매못은 성인이 순교한 곳이다. 바닷가 모래사장, 갈매못성지는 갈 때마다 아름답고 성스럽다. 세상 대신 예수님을 얻은 주교님은 죽음마저 예수님을 닮고자 했다. 예정된 처형일이 연기되려 하자 외쳤다. “안 되오. 내일 죽어야 하오. 내일은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오.” 다블뤼는 주님께서 수난하고 죽으신 날, 1866년 성 금요일에 예수님처럼 순교하였다.

당진 신리성지도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신리에는 순교를 위해 체포되기 전까지 그가 머물던 초가가 있다. 소박한 초가의 창호지문 너머에 다블뤼 주교가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교리책을 만들고, 조선 순교자들의 귀한 행적을 기록하고 있을 것만 같다.

다블뤼 성인을 갈매못과 신리라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신비로운 체험이다. 그리고 성인과의 만남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경험이었다.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축일에 그분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가진 안토니오 다블뤼를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옛날 안토니오 성인 역시 부유하게 태어났지만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은수자의 삶을 살았다. 신자들이 자신의 세례 성인을 은연중에 본받는 것처럼, 다블뤼가 부유함 대신에 예수님을 택한 것은 자신의 수호성인 안토니오를 닮아서일 것이다.


다블뤼 성인 닮은 후손 들렉 신부 만나

그런데 성인화 작업을 하면서 다블뤼 성인을 닮은 또 다른 안토니오를 만났다.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다블뤼 주교의 후손 안토니오 들렉(Antoine Delegue) 신부를 알게 된 것이다. 들렉 신부는 성령선교회에 입회하여 아프리카 선교사로 52년간 사목하였다. 그는 순교자 할아버지의 한국을 늘 생각했다며, 평생 사용하던 성작을 할아버지 주교가 가장 사랑했던 한국에 선물했다. 고되었지만 당신처럼 살았노라고 천상의 할아버지께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낡은 성작에 배어있는 자신의 인생을 봉헌한 것이다. 안토니오 들렉에게서 160년 전 안토니오 다블뤼가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세상 대신 예수님을 얻고, ‘예수님을 가져서 모든 것을 가진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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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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