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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식 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54) 언제나 ‘예!’라고 말하기 ⑫

믿음은 ‘형성 위기’ 속에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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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는 기투’(Appreciative Abandonment)에 대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짚어 보고 넘어가 보기로 한다. 이것은 이 개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정하는 기투’란 하느님의 뜻을 인정(수락)하고 그 뜻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던진다는 의미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정하는 기투’의 삶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늘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참으로 진솔된 마음으로 찬양을 한다. 이 사람이 이처럼 전적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돌보심과 넓이와 깊이에 대해 믿기 때문이다. 신뢰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완벽한 조화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사실 그리 조화롭지 못하다.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도 부조화의 극을 달리고 있다. 인간이 행복하길 원하면서도,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했으면서 인간이 스스로 멸망의 구렁텅이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팔짱만 끼고 보고 계신 듯하다.

하지만 ‘인정하는 기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요청한다. 인간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불합리하고 부조화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한다. 이같은 무한한 신뢰와 인정하는 기투의 전형은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놓는 순교자들의 모습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영적 깊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은 아닐까.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악으로 가득차 있는가. 왜 나는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성당도 나갔는데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왜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의 믿음은 실제로 형성 위기 속에서 더 깊어진다는 점이다. 믿음은 물론 편안한 상태에서,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도 가능하다. 위기 상황이 왔다고 해서 믿음이 반드시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위기상황, 믿음과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편안한 상태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영적 진보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영적으로 심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며 유혹도 기회다. 성장은 좋을 때도 안좋을 때도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시간과 공간은 은총이기에 매일의 일상 삶에서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은총의 기회(때)이다.

세상은 오류 투성이다. 인간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Acknowledge), 긍정하고(Affirmative) 나 자신을 성찰하면 그 사람은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 전이점에 도달하게 된다. 드디어 반형성적인 길에서 형성적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영적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가 다가왔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예”라고 대답하자. 이러한 응답은 우리를 정화하고,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영역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또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뜻에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자주 이러한 위기들을 활용하신다.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내가 불이익이나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완전히 바뀌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에도 우리는 확신을 갖고 “예”라고 응답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은 인간 이성의 판단이기에 긍정과 부정은 이성 문제이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판단할 때 모든 사건은 좋건 나쁘건 깨달음의 시간이기에 형성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께 모든 일,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맞겨 드릴 용덕은 없는가?

우리가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예”하고 말하는 것을 적용할(Apply) 때, 우리는 명백히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조차 희망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형성 위기 속에서 깊어진다. 우리는 참으로 그 속에서 영적인 성숙을 향해 성장해 나가고, 형성하는 신적 신비와 더불어 공명(조화로움·Consonance)을 향해 움직여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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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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