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생명은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더구나 배가 고파서 곤란입니다. 요전에 한 편지는 안 갔는지요. 당신은 편지 받고 꼭 해답하세요…."(1950년 10월 8일)
"…정세를 보면 다 같이 있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소식을 기다립니다. 내가 없어도 사진을 보세요. 만나보기가 어렵습니다…."(1950년 10월 12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때 평안남도 사법 간부양성소 연수생이던 아내가 남편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했던 사람들, 이들에겐 전쟁의 두려움보다 서로 떨어져 지내는 가족과 친척을 향한 그리움이 더 컸다.
한국전쟁의 산 증인인 당시 편지들을 모아 기획한 연극 `달아나라, 편지야-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제작: 극단 동네방네, 연출: 유환민 신부). 정전 6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25일부터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연극이 11일로 막을 내린다.
가톨릭청년회관 `다리`(관장 유환민 신부)가 기획하고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소년문화사목부가 후원한 이 연극은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로 도착한 편지 728통과 엽서 344매 중 일부의 사연을 극화한 것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물했다.
전쟁 당시의 가슴 아픈 사연들에 낭독과 해설을 곁들인 연극은 기승전결이나 반전 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편지 하나하나가 지니는 기다림과 향수, 이별과 체념 등 다양한 주제를 극화함으로써 의미를 더했다.
연극에 사용된 편지와 엽서들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다가 1977년 일반에 공개된 것들이다.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이 편지와 엽서들은 2008년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흥환 지음, 도서출판 삼인)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 이를 지난해 유환민 신부가 극화해 처음 무대에 올렸고,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다.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 이새별(릴리안, 29, 서울 명동본당)씨는 "사실을 다룬 얘기다 보니 연습할 때 감정에 복받쳐 울 때도 있었다"며 "전달 위주의 공연이라 관객들에게 편지 그대로의 감동을 전해주고자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편지 주인공들이 아직 살아 있기를 바라고 언젠가 꼭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연기에 집중했다"며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문의 : 070-8668-5796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