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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연명의료 결정과 죽음 준비

남 정 률 요한 사도 ( 기획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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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의료 결정`이라고 들어보았는가. 본지를 꼼꼼하게 읽는 독자라면 기억이 날 것이다. 2013년 9월, 현재 진행형인 우리 사회 생명 현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고 불린 바로 그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만 연장할 뿐인 무익하고도 해로운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복잡다단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는 최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제출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확정한 뒤 법제화 작업에 들어갔다. 교회는 정부가 마련한 권고안 자체는 큰 문제가 없으나, 법제화가 본래 뜻과 달리 생명경시 행위를 용인하는 데 악용될 수 있으므로 법제화에 앞서 법제화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 조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를 둘러싼 향후 시시비비는 앞으로 본지에서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이니 관심을 갖고 읽어주길 바란다.

 연명의료 결정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실 죽음 준비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연명의료 결정 문제야말로 죽음 준비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다.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듣지 못했기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가족이 환자에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지 못하는 이유는 환자가 받을 충격을 우려해서가 대부분이다. 반면 환자는 그 경우 그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본인의 죽음을 본인이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말은 쉬워도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아마 많은 가정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권고안에 의하면 연명의료 결정, 즉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이성적으로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를 토대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연명의료계획서가 연명의료 결정의 핵심이 된다. 이는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연명의료를 의사의 협의를 거쳐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에게 생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 환자에게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쓰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처럼 죽음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풍토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죽는다.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죽음에 끌려가기보다는 죽음을 미리 알고 의연하게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만사가 그렇듯,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하는 준비는 아무래도 부실하기 쉽다. 평소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준비함으로써 죽음과 친숙해졌다면, 마지막 순간에 왔을 때 가족이 본인에게 가까워진 죽음을 말하는 데 스스럼이 없을 것이고, 스스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는 데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이 뿌리를 내리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 금기시되는 것이 아니라 친근한 친구가 될 때 연명의료 결정은 자리를 잡을 것이다. 더군다나 죽음이 하느님을 만나는 관문임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과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준비도 없이 하느님을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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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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