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1873-1897)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교황 권고 「그것은 신뢰입니다」(C’est la Confiance)를 15일 발표했다. 교회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한 성녀의 삶과 영성에서 핵심을 추려 현대인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취지다.
성녀 데레사는 24년 짧은 생애 동안 하느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과 절대적 신뢰의 모범을 보여준 맨발의 가르멜수녀회 수도자다. 성녀는 하느님 정원에 핀 ‘작은 꽃’과 ‘아기 예수의 장난감’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소화(小花) 데레사 혹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
교황은 가장 먼저 하느님을 향한 데레사의 무조건적이면서도 완전한 신뢰에 주목했다.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신뢰, 오직 신뢰뿐입니다”라는 데레사의 말을 19쪽 분량 권고의 맨 앞에 배치했다. 그러면서 “이 말은 성녀 데레사의 영성적 천재성을 요약하고, 그가 교회 박사로 선포된 사실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레사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15살에 수녀원에 들어가 동료 수녀들로부터 ‘장미보다는 가시를’ 더 많이 받았다. 또 꽃다운 나이에 결핵에 걸려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데레사가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 정원의 작은 꽃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주님께 대한 신뢰에서 나왔다. 데레사는 수녀회 입회 전인 13살에 이기심과 자기 연민의 감옥에서 벗어난 순간 “자기 자신을 잊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사랑이 마음에 들어왔다”(자서전 원고 1」)고 고백했다. 교황은 데레사의 영성적 천재성을 이 대목에서 발견한 것으로 추측된다.
교황은 데레사의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은 “매우 복잡한 시대에 단순함의 중요성, 사랑, 신뢰, 포기의 절대적 우위를 재발견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규칙(규정)으로 채우고, 복음의 기쁨을 식게 하는 율법주의(도덕주의적 사고방식)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데레사의 선교 열정도 칭송했다. 데레사는 ‘선교의 수호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데레사는 수도생활 9년 반 동안 선교 여행은커녕 봉쇄수녀원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선교 활동은 수도회 사도직이 아니었다. 몸이 허약해 멀리 선교를 떠날 수도 없었다.
데레사는 그런 한계 속에서도 “몇 년이 아니라 평생, 아니 세상 끝날까지 선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편지와 기도를 통해 선교사들과 함께했다. 임종 직전에는 “저의 낙원은 세상 종말까지는 땅에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구원해야 할 영혼들이 존재하는 한 휴식을 바라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세상 종말까지 기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고백이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이 동양의 사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데레사를 ‘세계의 모든 선교사와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한 이유다.
누구나 ‘작은 길’ 따를 수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사는 단순히 먼 길을 떠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복음 선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선교사는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디든 하느님 사랑의 도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데레사처럼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나 선교사라는 것이다. 교황은 “선교는 누군가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데레사는 자신이 선택한 ‘작은 길’을 하느님께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교황은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데레사의 작은 길은 여전히 시의적절하다”며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 앞에 그 길을 놓으셨기에 나이나 삶의 형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8일까지 북부 노르망디 지방 리지외에서 성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데레사 축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