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0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아우구스티누스의 편지 : 참 행복

[월간 꿈CUM] 영성의 길 (05)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연작 프레스코화. 이탈리아 산 지미냐노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에게!

저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흔히 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위대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자이다, 또 히포의 주교로서 많은 이단으로부터 그리스도교 교리를 지킨 교회의 학자이다, 혹은 서양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철학자라고 평가하시더군요!

하지만 저의 신원은 수도자입니다. 저는 죄스러운 삶을 살다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을 깨닫고 나서부터, 이에 응답하기 위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 수도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통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교리나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의 삶이 ‘참 행복’에 이르는 영적인 길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는 권면을 받은 나는 당신이 인도하심을 받아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들어가서 내 영혼의 눈으로 내 영혼의 눈 위에 있는, 내 정신 위에 있는 변하지 않는 빛을 보았습니다. …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 빛을 알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영원을 압니다. 사랑은 그것을 압니다. 오 영원한 진리요 참 사랑이요 사랑스런 영원이시여! 당신은 나의 하느님입니다. 나는 밤낮으로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 당신께서는 저의 연약한 시선을 물리치시고 내 안에서 강력하게 불을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사랑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고백록 7,10.16 항)”1)

이 구절은 제가 죄스러운 삶을 살다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고, 비록 타락한 인간 존재일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영혼 안에서 ‘빛’이며, ‘진리’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하느님을 늘 그리워하게 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고백을 통하여, 참 행복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에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혹시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행복에 대한 짧은 글도 썼습니다.2) 저는 이 책에서도 행복한 삶은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혹은 합리적인 판단 능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반드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우리 인간들의 잠재적 능력과 합리적 판단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참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영혼이 매우 순수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우리 영혼의 순수함은 바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은총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 행복은 참 신앙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면서 참 행복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참으로 행복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참으로 행복하시다면 아마 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는 제가 삶에서 참 행복을 얻지 못했던 과거의 체험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의 능력만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전의 저처럼 회의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인간의 합리적 판단 능력인 이성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전의 저처럼 이성을 초월한 참 행복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이성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행복을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이 매우 보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주시는 참 행복은 우리 인간의 능력과 이성을 뛰어넘고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깊은 상호 관계에서 오는 것이며, 그 관계가 크고 넓을수록 하느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저 같은 죄인도 참 행복에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
2014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의 순교영성 강학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디에고 데 판토하의 「칠극」 등을 영성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가톨릭 신앙인들의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각 교구 및 본당에서 ‘성인들의 삶과 영성’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 10

1요한 5장 11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