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성당을 갈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어린 마음에 엄마의 손을 잡고 성당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한 손은 저보다 어린 동생의 차지였고, 나머지 한 손은 엄마의 ‘성당 가방’이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엄마가 가방 같은 것은 데리고 가지 말고, 대신 제 손을 잡고 걸어가 주시길 바랐습니다. 그랬지만 엄마는 항상 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가실 적이면 성당 이름이 크게 인쇄되어 있는 가방을 꼭 챙겨서 가셨습니다. 저는 그 옆을, 혹은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과연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시나 궁금하여 엄마 몰래 가방 안을 뒤져보았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성가 책과 가톨릭 기도서, 매일 미사 책, 그리고 묵주 하나와 미사보가 들어있는 헝겊 주머니가 전부였습니다. 사실 별거 없었지만, 엄마에게는 성당에 가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아주 특별하고 귀한 가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당 가방’이라고 불렸던 엄마만의 가방이었나 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몰라도….
‘성당 가방’을 들고 성당에 다닌 사람은 저희 엄마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자매님이 저희 엄마와 별반 차이 없는 구성품들로 가득 찬 성당 가방을 들고 성당에 다니셨지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보기 전에는 발견하기 힘든 게 성당 가방이 되었습니다. 대신에 품질과 가격 면에서 엄마의 예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월등히 우수하고 놀라운 ‘빽’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지요. 수려한 명품들도 많고, 세련미부터 중후한 느낌을 풍기는 ‘빽’들까지 참으로 고급스럽기까지 합니다.
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저희 엄마가 꾸렸던 구성품들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아니 들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핸드폰’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무겁다 못해 거추장스러운 성가 책이며 기도서, 매일 미사 책 같은 것들 대신 ‘핸드폰’만 ‘빽’에 넣고 성당에 다니면 됩니다. 모든 것을 ‘핸드폰’이 알아서 보여주고, 읽어주고, 불러줍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핸드폰’이 있었다면, 저는 엄마의 손을 맘껏 잡고 성당에 다닐 수 있었을 텐데요.
참으로 간편하고 편리해진 신앙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투박하고 거친 가방 속에 그 무거운 책들을 잔뜩 담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성당을 오가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져서 좋습니다. 게다가 멋들어진 ‘빽’을 들고 걸을 수 있게 되어 맵시도 나고 참으로 근사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부터 미사를 기다리며 준비했던 ‘정성’과 그 정성스런 마음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무거운 ‘성당 가방’을 기꺼이 짊어지고 성당으로 향하는 ‘희생’, 그 희생의 정신으로 미사에 집중하며 온전히 전례에 임하려는 ‘노력’ 같은 것들입니다.
특히 ‘노력’과 관련해서 요즘에는 ‘핸드폰’ 때문에 미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미사 전에 해설자가 ‘핸드폰’을 묵음으로 해 주시거나 꺼 달라고 여러 번 안내를 해도 공염불이 됩니다. 미사 중에 느닷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사제는 강론을 하다가 버벅거립니다. 카톡이나 메시지 같은 것들은 수시로 교우들에게 전달되고, 그때마다 분심은 성당 안에 고스란히 퍼져나갑니다.
교우들은 성가를 부르기 위해, 또는 매일 미사 어플을 통해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핸드폰’을 끄지 않고 켜 둔다지만, 실수로 누른 재생 버튼 때문에 사제의 입당이 끝났는데도 ‘핸드폰’은 홀로 입당성가를 부르고 있고, 독서와 복음 시간이 아닌데도, 때마침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고자 눈과 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향해 나아갑니다. 심지어 사제의 강론을 듣다가 긴가민가한 내용이 있으면 진위여부를 따져보고자 과감하게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하고,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침묵 중에 기도하며 기다리기보다는 그 시간이 무료한 나머지 카톡 채팅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기도 합니다. 미사 전 고해실을 나와 제의방으로 향하던 저는 웹툰 만화를 보는 신자들과 그 짬을 이용해 주식거래까지 하는 이들도 여러 번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의 ‘성당 가방’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것은 목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천상의 노래방이 담겨 있는 성능 좋은 오디오였습니다. 그것은 언제든 꺼내어 읽어볼 수 있는 하느님의 달콤한 말씀이 가득 담겨 있는 꿀단지였습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복주머니였습니다.
가지런히 하얀 미사보를 쓰시고, 빛나는 눈동자로 본당 신부님을 바라보시며 강론을 들으시고, 행여 구겨질세라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시며 성가를 부르시고 기도문을 읊으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엄마의 곁을 지키며 차분히 미사에 함께하고 있었던 엄마의 ‘성당 가방’이 아련히 보이는 듯합니다.
글_ 노성호 신부 (요한 보스코, 수원교구 명학본당 주임)
2004년 사제 서품. 평택 효명고등학교 교목, 수원교구 모산골, 양평, 죽전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명학본당 주임소임을 맡고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노래하는 형제 사제 듀오로, 동생 노중호 신부와 함께 2016년 Nobis Cum (노비스꿈) 1집 ‘우리와 함께’를, 2022년 2집 ‘또 다시 우리와 함께’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