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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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지쳐서 언젠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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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가 묘하다 싶어요. 지난가을에는 모든 일이 다 상승곡선을 탔어요. 매일 만 보씩 걸었고 아침저녁 출근길은 싱그러웠고 한동안 떨어졌던 집중력이 다시 회복되어 글도 쑥쑥 써졌어요. 골치 아픈 논문도 어째 뚝딱 썼고요. 아버지 드시던 약도 약효가 좋아서 염려했던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와, 우리 아부지 정말 대단하셔”, 마음으로는 호들갑에 가까운 감사가 무럭무럭 자랐고요.


겨울에 아버지께서 하늘나라 가시고는 모든 게 어려워졌어요. 처음엔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는데, 사람들 속에서 그럭저럭 장례식을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걷는 일, 웃는 일, 잠자는 일까지 다 어려워졌어요. 엄마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요.


그러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음에 금이 가면, 금 간 것을 생각하면, 계속 아파요. 그러니까 옛말에 ‘시간이 약이다’ 그러잖아요. 그 말 틀림없어요. 가장 좋은 용서는 잊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상처를 잊는 것도 좋지만 상처가 나로부터 멀어질 때가 있어요. 상처가 계속 나를 자극하고 괴롭힐 때가 있지만 상처도 지쳐서 언젠가 가요. 그것만 믿으면 돼요.”


음유 시인 같은 가수 김창완 님이 느린 말로 전해주는 메시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받는 상처들, 그걸 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미욱한 우리. ‘상처도 미움도 다 지나게 마련’이라는 말을 들으며, ‘상처도’ 대신에 주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어도 보았어요. 슬픔도 지쳐서 언젠가 가겠지. 지쳐서 가는 것이 감정과 마음뿐이랴, 사람도 지쳐서 가고, 모든 것이 지쳐서 다 가겠지. 지쳐서 가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야지. 그리 생각하니 마음, 사람, 일, 대상, 이 세상 만물에 다 연민이 생깁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듯이 자라며 이우는 것이 모두 세상의 이치겠지요. 다 때가 있겠지요. 그러니 슬픔도 너무 빨리 벗으려 하지 말고 천천히 갈무리해야겠지요. 사랑할 때, 미워할 때, 싸울 때, 화해할 때, 찾을 때, 잃을 때, 침묵할 때, 말할 때, 나설 때, 물러설 때, 간직할 때, 버릴 때, 아낄 때, 베풀 때, 안을 때, 내줄 때, 그때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알 수 있을까요? 알고자 하는 의지보다 고요히 기다리는 마음, 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조용히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할까요?


떠나시던 아버지는 자신의 때를 아셨을까요? 작별의 순간을 알지 못하고 무심코 손을 흔드는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나가는 시간 속의 연약한 존재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의 작은 기쁨도 소중하게 보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도 잘 기다릴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상처도 지쳐서 간다면, 슬픔도 지쳐서 간다면, 그렇다면 그리움도 지쳐서 가겠지요? 기억을 잊는 망각이 두렵기도 한 저는 오늘도 기다림 안에서 ‘그때’를 생각합니다. ‘그때’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제게 오는 것일 터이니, 다가오면 잘 받아들이게 해주십사 소망하면서요.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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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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