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는 한국교회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신앙의 뿌리다. 사제가 부족했던 시절, 신자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복음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이어갔다. 공소는 제도 이전에 삶으로 신앙을 증거한 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한국교회는 성장했다. 파리외방전교회 보두네 신부가 공소에서 초대교회를 떠올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공소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공소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소의 소멸을 불가피한 결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공소는 단순한 전례 공간이나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공소를 지키고 살리려는 교회의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다. 원로사제의 공소 거주, 교구 간 사제 파견, 귀촌 신자들과의 연대는 공동체가 다시 숨 쉬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동시에 모든 공소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교회사적 가치가 큰 공소를 보존하고 순례와 교육의 장으로 살리려는 시도 역시 중요하다. 공소가 간직해온 신앙의 기억과 공동체 정신은 여전히 계승해야 할 교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공소는 ‘교회의 못자리’다. 이 기억을 잃는다면 한국교회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잊게 된다. 공소 보존은 향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교구와 본당, 신자들이 함께 공소의 의미를 다시 묻고 지켜야 할 이유를 공유할 때, 공소는 한국교회의 역사이자 미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