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운전자 사고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지요? 그래서인지 요즈음 운전하다 보면 ‘어르신 운전중’이라고 붙이고 다니는 차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문득 ‘저 표지판이 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하나 붙여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어르신 운전중’이라는 표현은 좀 위선적으로 느껴져 본당 사무장님께 부탁해 ‘고령 운전자임’이라고 적은 문구를 코팅해 차 뒷유리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이후 2개월여 시일이 지나면서 이 문구가 자주 의식이 되고, 뒤따라오는 운전자가 나를 어떻게 볼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혹여 작은 위반이라도 하면 “어허~ 나이 먹은 사람이 불량 운전(?)하네”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고, 수십 년 몸에 밴 운전 습관에 뒤통수를 맞을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괜히 붙였나 하는 부담이 생기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삶이 언제 정지될지 모르는 초고령의 말년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경계하게 만드는 좋은 징조라며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시선은 이마 앞 후사경(백미러)에 매달려 있는 수호성인 메달로 향하고, 핸들 왼쪽 아래 방향 지시 장치에 걸려 있는 묵주에 손이 가면서 불그레한 광대뼈에 열기가 솟음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평소 자주 만나는 교우들과 찻집에 앉아 이 솔직한 심정을 신앙고백처럼 털어놓았습니다. 근래 저의 운전 자세와 심정 변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꺼내자마자 세상 물정에 밝은 한 자매가 당장 그 표지판을 떼라고 권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고령 운전자임을 스스로 노출하는 것은 고의적인 사고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똑똑한 체하며 살았어도 세상의 이면은 볼 줄 모르는 순진한 저에게, 깨우침을 주는 그 자매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정신이 번쩍 나고 고마운지 즉시 차로 달려가 표지판을 떼어냈습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 36가 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저 또한 걱정이 앞섭니다. 차 없이는 어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 못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령’, ‘초고령’이란 말이 그렇게 썩 반갑게만 들리지는 않고, 가끔은 우리 사회가 노인 운전자를 폄하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노인은 늘어나는데 참된 ‘어르신’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가. 한창때는 마음 다스림이 문제요, 나이 들면 몸이 문제, 이제는 심신 둘 다 문제인 지금, 어떻게 하면 이웃과 사회에 표양이 되는 안전한 운전자, 나잇값 하는 참된 어르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 남은 제 인생의 길목을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의지합니다. 비록 세상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고령’이라는 단어 속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높을 고(高)자를 앞에 놓아 예우해 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입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이제 83세 아내 수산나와 순두부찌개 점심을 먹으러 집을 나서려 합니다. 한 노인의 푸념 섞인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_ 김정철 바오로(전주교구 용머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