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과천에서 전철을 타려다 플랫폼에서 노부부가 다투고 있는 모습을 봤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해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이번 달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썼기에 그러시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그 액수는 오만 원이었다.
오만 원. 누군가에게는 점심 몇 번 값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달의 숨통을 조이는 무게가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계셨다. 변명도, 억울함도 드러내지 않은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말없이 서 계신 그 모습에서, 돈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는 마침 오만 원이 있었다. 조용히 드릴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그러나 괜한 오해를 사지는 않을지, 오히려 모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내 행동이 그분들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전철이 들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전철에 올라탄 뒤에도 하늘만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나눔은 늘 그렇게, 마음에서는 시작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렵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이 언젠가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노후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삶, 작은 지출 하나에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현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선물을 주고받는다.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선물을 드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문득 매일같이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간 자리를 말없이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묵묵히 비우는 분이다.
이름도 잘 알지 못한 채 늘 스쳐 지나가던 분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췄다.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어 커피믹스 한 봉지를 건넸다. 그분은 뜻밖에도 크게 기뻐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어떻게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걸 다 주세요.”
그 말속에는 물건에 대한 감사보다도, 사람으로 존중받았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선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이 말씀은 거창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찾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초대에 가깝다.
나눔은 특별한 결단이 아니라, 일상의 방향에서 시작된다. 나눔은 여유가 있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람의 지위에 높고 낮음이 없듯, 나눔에도 위아래는 없다. 있을 때 조금씩 나누며 사는 삶, 그 작은 실천이 서로를 버티게 한다.
설을 맞아 오가는 많은 선물 속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미 충분히 가진 이들보다, 오늘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마음 하나가 이 계절을 더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