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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 : 2000년 동안 새겨진 신앙의 그림들

[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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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꿈CUM


서기 50년경, 인구 20만 대도시 테살로니카의 중심가.

인종, 민족,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북적대는 그 번잡함의 중심으로 바오로가 걷고 있다. 얼굴은 잔뜩 상기된 상태. 그럴 만도 했다. 바오로는 지금까지 필리피 등 중소도시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왔다.

하지만 이제 목표는 마케도니아의 서울, 테살로니카다. 이 대도시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유럽 대륙 복음 선포가 탄력을 받느냐 아니면, 이대로 활력을 잃고 주저앉느냐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30일이면 충분했다. 바오로는 한 달여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물을 던졌다. 확신은 응답받는다. 그물이 터질 듯, 물고기가 올라왔다. 유대인은 물론이고 그리스 정관계 고위층까지 복음을 받아들였다. 테살로니카는 그렇게 복음의 땅이 됐다.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복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사도 17,1-4)

2000년 복음의 땅 테살로니카는 그 자체로 신앙 추억 앨범이었다. 바오로가   다녀간 이후 2000년 동안 축적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발아와 성장, 열매가 곳곳에 스크랩되어 있다.

앨범 첫 페이지에 로툰다(rotunda, 원형건물)라고 불리는 성 게오르기오스(St. Georgios) 성당이 있다. 로마 제국 동부를 다스리던 황제 갈레리우스(242~311)가 자신의 무덤으로 설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종교 자유 이후 순교자 성 게오르기오스(? ~ 361)에게 바치는 교회로 바뀌었다. 

테살로니카의 수호성인을 모신 성 디미트리우스(St. Demetrius) 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군인이었던 디미트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어겼다가 순교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412년에 재건, 7세기의 확장을 거쳤고, 1917년 화재 이후 1948년 새로 건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그리스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다. 
 
성 디미트리우스 성당 내부


8세기에 가톨릭 교회 성당으로 건축되었다가 지금은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는 성 소피아 성당의 웅장함도 추억 앨범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또 450년경 건축된 성모 바실리카(Basilica of the Virgin)도 1500년 역사의 깊이를 온 몸으로 만날 수 있는 신앙 공간이다. 거리 안내 표지판에는 이 성당이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etos)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친히 만들어 준 것’이라는 뜻이다. 이밖에도 테살로니카는 1246년 건립된성 가타리나(St. Catherine) 성당 등 수많은 신앙 추억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성당은 500여년간(1430~1912)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는데, 그리스 독립 후에 다시 정교회로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든 열매의 맨 앞줄에 바오로 사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테살로니카 전교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성 디미트리우스 성당


유대인들이 문제였다. 유대인들은 바오로 사도가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하며 수많은 사람을 입교시키자 이를 곱지 않게 봤다. 그래서 시 당국에 이렇게 고발한다. “그자들은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들을 어기고 있습니다.”(사도 17,7) 이들의 협박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를 ‘베로이아’라는 곳으로 피신시켜야 했을 정도였다.(사도 17,1-10 ; 1테살 2,13-16참조) 그러자 유대인들은 베로이아까지 쫓아와 훼방을 놓았고, 결국 바오로는 위협을 피해 아테네까지 가야 했다.(사도 17,10-15 참조) 

쫓겨나듯 아테네로 향하는 바오로의 머릿속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늘 테살로니카에 있었다.
“몸만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간절한 열망으로 여러분의 얼굴을 다시 보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 나 바오로가 여러 차례 가려고 하였습니다.”(1테살2,17-18)

아테네로 향하는 바오로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아테네로 향하는 그 복음 선포의 길, 바오로의 길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오로는 왜 테살로니카를 그토록 그리워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내 안에는 그리움이 있는가. 내 안에는 과연 테살로니카가 있는가. 
 
테살로니카 항구 전경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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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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