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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겸 마티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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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최여겸 마티아


제가 지금 소임을 맡고 있는 곳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소재한 ‘개갑장터 순교성지’입니다. 이곳은 1763년에 태어나서 1801에 순교한 복자 최여겸의 처형 장소입니다. 최여겸 마티아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2014년 8월 16일에 시복되셨습니다. 

최여겸에 대한 국가 공식 문서를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왕조실록 1801년 5월 16일 기사를 보면, 당시 전라도 지역을 관할하던 ‘전라 감사 김달순’의 보고서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죄인 한정흠, 최여겸, 유항검의 종 천규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획적으로 교를 넓혔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1801년 7월 13일, 최여겸 마티아가 순교하기 6일 전, 형조에서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도 있습니다.

“호남의 한정흠, 최여겸, 노복 천애 등은 ‘독실하게 믿고’, ‘십계명은 버리기 곤란하다’ 하고, ‘한 번 죽음을 달갑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에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압송하여, 법대로 사형에 처해 주소서.”

이러한 기록을 살펴보면, 최여겸 마티아뿐 아니라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김천애 안드레아, 세 분의 복자는 1801년 박해 때 체포되어 함께 수감되었던 분으로 평소에 얼마나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실천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독실하게 믿었고, 십계명을 버리기가 어렵다고 했으며, 천주교 신앙을 꾸준히 전파했고, 하느님 신앙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복자들의 삶과 신앙,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세 분 중에 최여겸 마티아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는 체포될 당시 한산 지역의 아내 집에 있었고, 전라 감사 앞에서 문초를 받을 때는 ‘자신의 팔순의 노모가 살아계시니 죽기 전에 어머니를 한 번 뵙고, 하직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 간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최여겸은 1801년에 38세였고, 아내와 가족이 있었을 것이며, 늙으신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늙으신 노모가 살아계시고, 가족이 있었던 복자 최여겸 마티아! 그런데 그분이 그토록 신앙을 꾸준히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가족들의 배려와 힘이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하느님 신앙 안에서 충실히 살았고, 천주교 신앙을 이웃에게 전파하려 노력하는 최여겸 곁에서 늙으신 어머니의 응원이 있었고, 아내를 비롯하여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 전파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형조 판결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해읍정법형’, 다시 말해서 최여겸은 순교할 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 ‘전라도 무장현’으로 압송되어, 조리돌림을 받고, 참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여겸이 순교하는 날! 어릴 적부터 최여겸을 알고 있던 이들 모두가 살고 있던 마을에서 ‘아들’이, ‘남편’이, 그리고 ‘아빠’가 참수 처형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고, 오가작통법과 연좌제를 실행하여 천주교와 가까이하는 이들 조차 체포되어 고통을 받았던 당시 상황에서 최여겸이 순교했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 모두는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의 눈을 피해 도망을 다니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최여겸의 가족들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순교 복자 최여겸 마티아! 우리는 오늘날에도 그분의 삶과 신앙을 통해 ‘순교’ 의 거룩함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지를 방문하면서 최여겸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으로 걸리는 것은 최여겸 마티아의 가족들입니다.

순교자는 지금도 현양되고, 추앙되는 삶을 살지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순교자의 가족’들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남편’, ‘아빠’의 순교를 확인하면서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친척과 이웃의 눈총을 피해 다니거나, 살던 집을 떠나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면서 유랑 걸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았던 순교자 가족들의 삶.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의 순교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 또한 기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순교자 현양 작업! 성지를 순례하는 모든 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순례하는 동안, 순교자뿐 아니라 순교자의 가족들도 생각하면서, 그들 삶의 아픔까지도 느껴보신다면 좋은 순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순교자뿐 아니라, 순교자의 가족까지도 함께 묵상하면서 순례의 여정을 걷는다면, 순교자의 삶과 신앙과 함께 순교자 가족들이 보여준 신앙의 지지와 응원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 순례는 가족의 소중함과 함께 ‘가족의 사랑’을 묵상하게 하는 영적인 여정이 될 것입니다. 순교자 곁에는 참 좋은 순교자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 봅시다.  


글 _ 강석진 신부 
(요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1997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1998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 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주교구 내 ‘개갑 순교성지’(전북 고창 소재)에서 성지 담당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가족편, 관계편),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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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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