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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많은 시간 일상 잡념에 사로잡혀 지낸다.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다시 확인해보자. pixabay 제공 |
“아, 맙소사! 교통카드를 두고 왔네.”
“오~ 어떡해! 서류 출력하고 프린터에 그대로 둔 채 나왔어.”
“아차! 오늘 늦는다고 했었나요?”
‘아, 이런, 맙소사, 아차, 오, 어머, 어떡해….’ 내가 쏟아내는 이런 감탄사들 대부분이 좋은 느낌의 설렘이나 감동의 말이 아니다. 탄식하거나 자책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애드리브처럼 나오는 한탄, “나도 나이를 먹어서….” 동시에 나의 마음속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나이 타령은 인제 그만! 50부터 하는 변명, 반백 년 나이 타령만 하다 세월 보내면 어찌할 건가?”
나는 안다. 책을 읽다가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꽃을 보면서도 보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이 길다 싶으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나의 의식의 스위치는 꺼져있다는 것도. 의식이 없다는 것은 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순간에는 아마 코끼리가 돌아다녀도 못 볼 것이다.
오늘은 성당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 기도했다. 시작할 때 기분이 좋았다. 편하고 고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성당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기도를 너무 잘해서? 아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성당 밖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친구 수녀도 만나고, 시간 없어 못 먹었던 호박죽도 먹고, 원고도 쓰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성당에 있었다. “오, 맙소사. 또 잡념에 당했어!” 잡스러운 생각이 나를 미아로 만들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잡념들과 싸우고 있다. 쫓아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봐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오랜 시간을 잡념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왔으니까. 머릿속 소리는 늘 그렇게 떠들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도를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나서도 기억이 나지 않고, 미사 강론을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잡념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잡생각은 불안을 부추기고 근심을 가중시킨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집중력을 잃는다. 신앙인이 집중할 힘이 없다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어디 기도뿐이랴. 중요한 일 대부분은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잡념’을 없애기로 했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낼 수는 없는 일, 오히려 대접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손님이다. 우선은 잡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답은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지루하고 심심하면 외롭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가도 이야기를 듣다가도 기도를 하다가도 재미가 없으면 틈새를 비집고 잡스러운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어제 먹던 짜장면, 아침에 하다 만 청소,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 다툼이 있었던 직장 동료….’ 쓸데없는 무의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잡념이 찾아오는 이유는 또 있다. 그동안 자극적인 재미 대상과 너무 친하게 지내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수녀인 나에게도 말이다. 손 안의 컴퓨터는 매일 매 순간 필요한 정보와 자극적인 감각으로 재미를 준다.
알람으로 눈을 뜨고 날씨를 본다. 뉴스를 보고 정보 검색을 하고 책을 구매하고 누군가 보내온 영상을 본다. 사진을 찍고 전화를 하고 채팅을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맡긴다. 앱으로 라디오를 듣고 길을 묻는다. 관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의도 듣고 그들의 인터뷰나 칼럼을 읽는다. 이렇듯 스마트기기는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주고 나의 감각마저 즐겁게 해 준다.
어쩌면 감각을 통째로 기계에 맡겨놓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능동적으로 무언가 애써 얻어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지루하다, 심심하다, 느리다고 느껴질 때 바로 잡념은 시작된다. 주의력은 떨어지고 의식은 사라진다. 그 순간 무슨 말을 들어도 무엇을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 일에 집중하고 있나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가요? 한번 확인해볼래요. 좋아하는 성경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잠깐 멈춰요. 5분만 해 볼래요? 그리고 머릿속 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하세요. 내가 나를 보는 거지요. 5초, 10초, 1분, 5분. 자, 다른 생각이 들어오던가요? 머릿속 소란스러움을 느꼈나요? 잡념이 생길 때 말을 걸지는 말고 듣기만 해요. 그렇게 반복해서 알아채기만 해도 집중할 수 있는 의식의 빛이 켜지지 않을까요?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