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톨레도는 줄곧 ‘서울’이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랜 기간 수도를 지킨 경주가 한국의 천년고도라면, 톨레도는 스페인의 모든 역사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는 2천년 고도다. 8세기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발전하기 시작해 1561년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무려 900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 문화와 예술, 역사적 유산이 찬란하다. 그리스도교, 유태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고, 스페인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가 이곳에서 태어나거나 살았다. 이슬람계 칼리파 왕조 시대 예술과 과학의 조화를 이룬 스페인의 ‘경주’와도 같은 고도 톨레도를 찾아가봤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처럼 보여
톨레도는 지난 호에 소개했던 성녀 테레사의 성지 아빌라와 마찬가지로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채도시다. 현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지역에 포함돼 있는 톨레도 주의 주도다.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 스페인 고속철도 아베를 타고 이동했다. 톨레도 역사(驛舍)는 스페인 2천년의 고도답게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적갈색의 화려한 외양과 이슬람 풍의 기하학적 문양을 활용한 장식의 내부가 눈길을 끈다.
톨레도는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 시가지 지역과 주거지가 밀집돼 있는 신 시가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톨레도 역사에서 구 시가지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타호 강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데다가, 도시 자체가 지면에서 솟아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처럼 보인다.
▲ 2000년 역사를 간직한 톨레도 전경.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처럼 보인다.
톨레도 구 시가지에 들어서면 “스페인에 머무르는 시간이 하루밖에 없다면 반드시 톨레도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스페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심장에 해당하는 역사를 갖고 있는 톨레도는 현재 인구 10만이 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도시가 됐지만 구 시가지 곳곳에는 전통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옛 역사(歷史)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톨레도에는 3세기부터 요새가 있던 자리에 개축한 장방형의 요새 알카사르(Alcazar)와 산토 토메성당, 엘 그레코의 집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가톨릭의 숨결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톨레도대성당과 도시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엘 그레코의 작품에서다.
구 시가지 가운데 위치한 톨레도대성당
톨레도 구 시가지는 가운데 위치한 톨레도대성당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다. 톨레도대성당은 스페인 고딕양식 성당 중에서도 가장 스페인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톨레도의 대표 유적지다. 1226년 착공돼 1493년 완공된 이 성당은 동서로 길게 뻗은 십자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길이 120m, 폭 56m, 높이 44.5m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15세기 무렵 그라나다가 함락됨과 동시에 스페인이 통일된 이후, 유대인 추방 정책의 중심이 되었던 곳 또한 이곳 톨레도대성당이다. 대성당은 성모발현예배당 중앙예배당 등 22개의 예배당과, 북쪽 회랑이 있는 안뜰, 부속 예배당을 갖추고 있는데, 착공 267년이 지난 1493년에서야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됐다. 제단의 화려한 조각품이나 합창대석의 조각,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성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다.
톨레도대성당 안은 어둡다. 크고 웅장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문이 작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은 어두운 대성당 안을 오묘한 빛으로 차분하게 채우고 있다.
성당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게 장식돼 있는 부분 중 하나로 중앙예배당 제단 병풍을 꼽을 수 있다. 1498년 조각가 쁘티 쟝에 의해 조각된 이 병풍은 예수의 생애를 7폭의 병풍에 담고 있는데, 금으로 제작돼 있어 어두운 성당 내부에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병풍을 밝히고 있는 채광창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도 환상적이다. 어두운 성당 내부를 밝히기 위해 설계된 이 채광창은 마치 성인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천국문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