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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사제] 장영식 신부

''사제 삶의 정석'', 삼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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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봉(가운데) 신부의 사제서품식.
삼촌 장영식(맨 오른쪽) 신부와 가족들이 장 신부의 사제 서품을 함께 축하하며 찍은 기념사진.
 

장재봉 신부(부산 가톨릭대 교수, 윤리신학)


삼촌 이제 일어나세요.

원고를 쓰려니 참 많은 분이 떠오릅니다. 가르쳐주고 이끌어주고 함께 해주신 멘토를 이렇게 많이 선물 받았다는 걸 깨달으며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깨어나지 못하시는 삼촌 병실을 지키면서/ 그 자리에서조차/ 못난 조카는 삶을 공부하고/ 배울 뿐이었습니다/ 조카신부 챙겨주는 일, 조카신부 살펴주는 일, 조카신부 위하는 일이라면/ 몸으로 마음으로 아낌이 없으셨던 삼촌이/ 그 날은/ 찾아온 조카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답도 웃음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삼촌은/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서/ 모른 척/ 누워만 계셨을까요/ 남긴 것 없이 비워낸 손/ 숨긴 것 없이 비운 마음/ 그저/ 숨소리만 거칠게 들려주셨습니다/ 아, 나도, 꼭, 삼촌신부님처럼/ 그렇게 빈손으로/ 텅 빈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라는 당부를 주신 것을/ 아침에야 알았습니다/ 삼촌은/ 혼절해 계신 그 곳에서도 조카를/ 챙기고 계셨습니다.

갑작스런 삼촌신부님의 혼절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상에서 자는 듯 편안하신 삼촌의 얼굴을 만났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두 해를 넘기고 계신 삼촌을 생각하며 그 날 끄적인 글을 꺼내니 격조했던 일이 마음을 찌르고 사랑을 받기만 했던 기억으로 마음이 다시 무겁습니다.

말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시는 삼촌을 뵈온 후, "누워 있는 날수만큼" 이스라엘이 지은 햇수만큼을 짊어진 채 꼼짝 못하고 묶인 채로 지냈던 에제키엘 예언자께 `묶여 계신` 삼촌신부님을 부탁드립니다(에제 4장 참조). "밧줄로 묶어서, 네가 갇혀 있는 기한이 다 찰 때까지 옆구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리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뜻을 울음으로 찬미하며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께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있는 장영식 토마스 사제(대전교구).

그날 아침, 건강하던 삼촌신부님께서는 못난 조카사제를 위한 절절한 희생의 기도를 올리셨을까요. 에제키엘처럼 주님의 끈에 묶여 조카신부를 위해 바쳐지기를 소원하셨던 건 아닐까요. 삼촌신부님은 지금, 못난 조카신부를 위한 보속을 감당하고 계신 건 아닐런지요.

첫 미사에 오신 삼촌신부님은 제게 "이제 너는 내 조카가 아니고 형제다"라고 고백해 주셨습니다(감동!). 분주한 본당보좌 시절, "사제가 이렇게 바쁜 줄 몰랐다"는 철없는 조카에게 믿음의 굵은 철심하나 꽂아 주셨지요. "그렇게 바쁘면 한 시간 성체조배하고, 바빠 죽겠으면 두 시간 조배하고, 견딜 수 없이 힘들 때에는 세 시간을 조배하라." 이제까지 저를 지켜주는 `사제 삶의 정석`입니다.

그리 소원하시던 성인사제의 삶을 세상을 향한 묵언으로, 오직 받아들임으로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더 키우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온통 주님께 맡기고 아무것도 홀로 할 수가 없어 주님께 훨씬 어여쁘리라 믿습니다.

평생 복음의 아이이기를 원하셨으니 더 `작은아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욕심쟁이 조카는 일어나 더 많이 가르쳐주기를 기다립니다. 때문에 오늘도 주님의 자비심에 질기게 기도합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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