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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3) 1911년 10월 20일~11월 9일

아름다운 제주에서 보낸 스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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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을 사목 방문한 드망즈 주교는 수류, 신성리(신성리본당, 전북 정읍시 시기동성당의 전신), 장성, 계량(전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양천본당은 현재 노안본당의 전신)을 순방했다. 그리고 목포로 가서 ‘미우라마루’호에 오른 후 배를 타고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에 도착한다.

1911년 10월 20일

우리는 오전 3시부터 7시까지 추자도에 정박한 후 정오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라크루(Lacrouts) 신부와 타케(Taquet) 신부가 나를 데리러 왔다. 성대한 환영이 있었다.

10월 24~30일

산과 처녀림을 거쳐 제주읍에서 홍로(제주도 서귀포시 서홍동본당이 있던 곳, 현 서귀포본당의 전신)까지 여행했다.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기 위해 멈췄던 시간까지 포함해서 12시간을 걸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때에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다.

30일 산림을 지나서 제주로 돌아왔다. 1000m까지 올라갔을 때, 우리는 오늘 생일을 맞는 타케 신부의 건강을 위해 건배하고 미사주를 한 잔씩 마셨다. 내려오는 길에 산림을 빠져나와 다시 말에 오르려고 돌 위에 발을 걸쳤을 때, 돌이 빠져 발을 삐어버렸다.

발이 부어올라 다음날은 거동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창미사(사제가 성가대와 함께 미사고유문뿐만 아니라 파견 선포까지 노래로 하는 미사)를 드리고 영성체를 줄 수는 있었다.

11월 7~9일

나는 앞선 배를 놓쳤는데, 그 배는 내가 제주로 돌아온 바로 그날 출발했다. 걸을 수 있게 됐으므로 산책을 좀 했다. 특히 제주도 사람들의 세 조상인 ‘고’ ‘양’ ‘부’가 나왔다는 세 개의 성스러운 굴, 삼성혈에 갔었다.

다음날 나는 나를 데려다 준 바로 그 ‘미우라마루’호에 올라탔다. 2명의 동료 신부와 작별인사를 하고 출발했다. 기분 좋은 항해였다. 갑판 위에서 맞은 저녁은 매혹적이었고, 멀리 제주도가 보였다.

배는 다음날인 저녁 6시 부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탔던 배가 바다에서 불타버렸음을 알게 됐다. 줄리앙 신부가 성사집행을 하러 갔기 때문에 그의 석유난로 불로 음식을 만들었다. 내 첫 사제관이었던 이 집에 다시 오게 된 사실(드망즈 주교는 부산 범일동본당의 제4대 주임신부로 1899~1900년 재임했었다)이 나를 오랫동안 공상에 잠기게 했다. 얼마나 오랜 옛날인 것 같은지….

■ 드망즈 플로리앙 주교는…

한국·남방교회 발전에 헌신

1925년 드망즈 주교는 교황청에서 거행된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에 참석했으며, 1927년 ‘가톨릭신문’의 전신인 ‘천주교회보’를 창간했다. 1928년 중병을 얻어 치료와 요양을 위해 본국에서 3년 동안 체류하다가 1930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많은 일을 이뤘지만 당시 드망즈 주교는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교세를 혼자 전담하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31년과 1934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가 각각 감목대리구로 설정됐다.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린 ‘한국 천주교회 공의회’에서는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리서를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1934년 ‘천주교 요리문답’도 간행했다.

많은 업적을 세운 드망즈 주교에게 프랑스 정부는 같은 해 10월 31일, 최고 문화훈장인 ‘레종 도뇌르 기사장’을 수여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애써온 헌신과 대구교구 신설에 대한 절대적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교구장으로서 교세를 크게 신장시킨 드망즈 주교는 1937년 전라북도 지역을 전주지목구로 승격시켜 한국인 교구로 설정함과 동시에, 전라남도 지역도 광주지목구로 승격시켰다.

드망즈 주교는 1938년 63세의 나이로 대구에서 선종했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교회는 대구교구가 창설된 지 25년 만에 전주교구와 광주교구를 분립시킬 만큼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믿고 일하라’라는 그의 사목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신부·주교로서 40여 년 동안을 오직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드망즈 주교의 역사가 남방교회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제주도 라크루 신부의 집에서 만난 한국인 소녀 소피아와 마리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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